거울 앞에서 족집게로 흰머리를 뽑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유전적으로 흰머리가 적은 편이지만 동년배 중에는 "틈틈이 뿌리염색으로 새치를 감추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백발 마녀다"라고 고백하는 친구도 여럿 있다.
남녀 공히 40대 무렵부터 흰머리가 생기는 게 정상이다. 문제는 남성의 흰머리는 '로맨스 그레이' 같은 수식어로 예찬되지만, 여성의 흰머리는 외모 포기, 게으름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묘한 풍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도 젊음, 어려보이는 것에 유난히 높은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동안 신드롬'이 대세이다 보니 중년 여성들에게 염색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귀찮기도 하고, 염색약이 눈이나 두피에 자극이 되지만 "망측해 보일까봐" "남의 눈 때문에" 염색을 한다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최근 새 정부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의 은발은 단연 화제가 됐다. 63세인 그녀가 당당하게 흰머리를 드러내고 국제 무대를 누비는 데 대해 신선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중후하고 멋지다" "꾸밈없는 모습이 당당해 보인다"는 글이 쏟아졌다.
강 후보자는 2012년 언론사 인터뷰에서 "본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2008년 새해 결심 중 하나로 '염색 안 하기'를 정했다"며 "내가 일하고 있는 제네바는 워낙 다양한 인종에 머리색깔이 천차만별이라 내 반백 머리를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 해외 여걸들 가운데 은발이 적지 않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푸잉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대변인 등이 꼽힌다. 흰머리는 그녀들에 방해가 되기보다는 더 강인하게 보이게 하는 패션전략으로 작용한다. 우리도 머리 색깔에 편견을 가질게 아니라 취향의 문제로 볼 때가 됐다.
강 후보자가 자녀의 미국 국적, 위장 전입이 문제가 되고 있어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그는 인공 미인이 넘쳐나는 지금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 중후한 나이듦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결코 작지 않은 메시지다. 당당한 백발의 5060 여성들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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