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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사람들]'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재일동포 3세 최아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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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삶을 '新팝아트'로 표현… 뉴욕 등 해외 화단서 주목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미술 공부라고는 초중고 시절 미술시간 수업이 전부였음에도 뉴욕·파리 등 해외 화단에서 호평을 받는 재일동포 화가가 고국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오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샘터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는 최아희(34) 씨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국제아트페어에 참석했지만 고국에서의 첫 개인전이 젊은이의 거리인 대학로라서 무척 설렌다"며 말문을 열었다.

연합뉴스


2012년 일본에서 첫 전시회를 열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2013년 뉴욕 오우치 갤러리에서 열린 '100대 젊은 예술가전'에 초대되면서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뉴욕·파리·밀라노·홍콩·싱가포르·서울 등에서 열린 국제아트페어에 40여 차례 참여했고, 미국 현대 미술계 중진 작가이자 평론가인 존 화이트로부터 "팝아트 초창기 작가인 니콜라 쿠르체닉을 떠오르게 하는 작가"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꿈속에서 받은 영감을 나무패널 등에 추상적인 색과 선·면으로 표현해서 '新팝아트 작가'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전문적으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고 한일 양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인 데다 국제 미술계의 비주류인 아시아인이라서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꿈은 프로 스케이트보드 선수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스케이트보드에 빠져들어 고교 시절에는 기업의 후원을 받을 정도로 전도가 유망했으나 발목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때 우연히 낙서하듯 그려놓은 이미지를 보고 친구들이 "소질 있다"며 권유해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다.

"처음 붓을 잡은 것이 2009년이었죠. 미국 LA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당시는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저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무언가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던 버릇이 있어서인지 그림 그리다 날밤을 새우곤 했는데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귀국 후 2010년 오사카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더 커졌고 퇴근 후에는 화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전업 작가로의 길은 우연히 찾아왔다. 2012년 갤러리카페를 운영하던 지인의 권유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6일 동안 1천여 명이 방명록에 사인을 남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고 전시 작품도 대부분 팔렸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처럼 짜릿함이 몰려오더군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평가받는 기쁨도 느꼈고요. 주변에서 '너무 늦은 나이 아니냐'며 만류했지만 미련없이 은행원을 그만두고 그림에만 매달렸습니다."

뉴욕의 아트페어에서 만난 화랑계 인사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참신하고 독특한 그림인데 비주류인 동양인이라는 것과 미술 관련 학력이 전무하다는 점에서다.

"평론가들이 제 그림에는 기모노나 우키요에(일본 민화)적인 선이 들어있는데 일본인은 거의 쓰지 않는 화려한 색을 표현한다고 궁금해합니다. 한국 사찰의 단청 같은 색감이거든요. 한일 양국 어디에도 완전히 녹아들 수 없는 재일동포의 삶이 그림에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분방함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상투적인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어서 그림 가격이 어느 정도 되냐고 묻자 "많은 사람이 제 그림을 보고 즐기기를 원해 비싸게 받지 않는다"며 "500만∼1천만 원 사이"라고 밝혔다.

"그림값은 상대적인 거라서 사람에 따라 비쌀 수도 쌀 수도 있죠. 저는 모든 사람이 부담 없이 제 그림을 보고 즐기며 소장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휴대폰 케이스, 신발, 엽서, 티셔츠 등에도 그림을 넣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대중적인 거리문화에 익숙해져서인지 소수만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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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아티스트'로 불리는 재일3세 최아희 씨의 개인전이 오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샘터갤러리에서 열린다.



히라야마 마사키라는 일본식 이름이 있지만 그는 어디서건 한국명을 고집하는 한국 국적자다. 3세쯤 되면 현지화되기 쉽다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사는 데는 집안의 영향이 컸다. 그는 재일동포 사회를 대변해온 재일대한민국민단에서 부인회를 설립해 모국 돕기에 앞장섰던 조모 권병우 여사와 재일한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며 경제·문화·스포츠 분야에서 한일 교류에 앞장서온 아버지 최종태 야마젠그룹 회장의 차남이다.

그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온 삶은 내게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부담"이라며 "누구의 손자나 누구의 아들이 아니라 화가 최아희로 평가받기 위해 집안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삶의 여유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그는 "전시장을 찾는 미술계 인사뿐만 아니라 관람객과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당장은 전 세계 근현대 미술 분야 거장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뉴욕현대미술관에 작품을 거는 게 목표지만 길게는 누구나 인생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고 늦은 때가 없다는 것을 전하는 화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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