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등 "대통령 지시, 인권보호 의지로 읽혀" 환영
대통령에 양심적 병역거부제 등 논란 이슈 의견전달 가능
인권위의 헌법기구화·기본권 강화 추진에 탄력 가능성
인권단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정책과 법으로 이어져야"
◇정부기관 ‘일부수용’ 남발…文 “인권위 존중해라”
지난 2001년 출범한 독립적 성격의 기구인 인권위는 정부기관의 인권침해와 각종 차별행위에 진정 및 조사, 인권 관련 정부 정책 및 제도의 개선 등을 맡고 있다. 인권위는 개별 정책 및 제도나 사건에 대해 권고 의견을 내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이 때문에 정부 기관은 개선권고를 받아도 불수용 의사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부 기관에선 인권위가 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개의 권고를 하면 그 중 입맛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는 ‘일부수용’ 방식으로 인권위 권고를 사실상 무시하는 편법을 썼다.
인권위와 청와대에 따르면 인권위의 정책·제도개선 권고에 대한 정부기관의 수용률은 2012년 91.7 %, 2013년 92.3%, 2014년 96.2%, 2015년 90.9%, 2016년 100% 등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전부수용률은 2012년 41.7%, 2014년 61.5%, 2016년 62.5%에 그친다.
특히 검찰·경찰·군 등 권력기관의 경우 전부수용률이 △노무현 정부 53.8% △이명박 정부 48.3% △박근혜 정부 55.6%로 낮은 편이다. 이들 기관은 업무 특성상 일반 국민과 조직 구성원에 인권침해할 여지가 많아 인권위와 자주 부딪혔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인권위가 힘을 가지려면 국가기관이 인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며 각 부처의 권고수용 상황을 점검하고 수용률을 높일 것을 지시했다.
인권위 고위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는 국민생활과 직결돼 있다”며 “정부기관이 국민을 위해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인권위원장을 직접 만나 보고받겠다고 한 것도 의미가 있다. 앞서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는 인권위원장이 각각 3번씩 대통령 보고를 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한번도 없었다.
위원장은 특별보고를 통해 전반적인 인권상황을 전달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형사처벌 폐지 문제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 군형법상 동성추행죄 폐지 문제 등 사회적 논란이 거센 이슈에 대한 의견도 직접 밝힐 수 있다.
청와대에서 인권위 업무를 맡는 곳은 민정수석실이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개헌서 ‘기본권 강화’ 추진…인권단체 “실제 개선책 이어져야”
문 대통령이 위상강화를 추진하면서 향후 이 기관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인권위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법개정 논의에서 위원장 주도로 ‘헌법기구화’와 ‘기본권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인권위가 정권의 성향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인권보호 역할을 수행하려면 헌법에 기구의 존재 및 역할에 대한 근거를 못박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현병철 당시 위원장은 조직을 대거 축소하고 잇따라 정권친화적 결정을 내려 인권단체 등에서 거센 사퇴압박을 받은 바 있다. 인권위는 박근혜 정부 때에도 경찰의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살수사건과 세월호 참사 단원고 비정규직 교사들의 순직처리 문제 등에 대해 뒤늦게 의견을 표명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인권위 위상이 높아지면 개헌논의에서 여성·장애인·아동 등 소수자 권리, 외국인 이주민 권리 등 전반적인 인권보호 강화 정책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인권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실질적인 인권개선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은선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팀장은 “정부기관이 권고 수용률 수치를 높이기 위해 자의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며 “실제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정책과 법 등에 대한 권고가 얼마나 지켜지는 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권사회연구소는 성명에서 “실효성을 갖추려면 인권위 내부쇄신과 인적청산을 진해해야 하며 인권단체 등 시민사회와도 협력하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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