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가는 마지막 여정까지 보살펴…원주경찰서 경찰관 귀감
탈북한 엄마와 단둘이 살아온 김하나(가명·15) 양은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오후 친구들과 놀다가 들뜬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집에서 옷을 만드시는 엄마의 단골 아주머니의 "엄마가 쓰러지셨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급히 집으로 달려온 김 양은 아주머니와 함께 119구급차를 타고 엄마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하루만인 6일 오후 6시께 하늘나라로 가셨다.
쓰러진 뒤 돌아가시기까지 의식이 회복되지 않아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김 양은 엄마랑 단둘이 살던 임대아파트에서 나와 인근 이종사촌 언니 집으로 옮겼다.
엄마의 도움으로 탈북, 남한에서 결혼해 근처에 사는 이종사촌 언니(35)는 이제 남은 유일한 혈육이다.
언니 집에서 연합뉴스 기자를 만난 김 양은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데 점점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져 허전할 때가 있다. 늘 안고 자던 친구 같은 엄마가 없으니 잘 때 생각이 많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힘이 들 때는 되도록 친구들이나 언니랑 같이 있으려고 한다"는 그녀는 "주위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어 힘이 된다"고 고마워했다.
장래 희망에 대해서는 "뭔가 하려면 성적이 돼야 넓게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겠다"며 어른스럽게 답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공부방'을 알아봐 주기로 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엄마가 미싱을 가르쳐줘 따라 한 적이 있다"면서 "엄마처럼 옷을 만들거나 미용, 요리 등 손을 쓰는 일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북한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가난과 억압이 싫어 1998년 중국으로 탈북한 어머니 김복실(가명·51) 씨는 2009년 10월 중국서 낳은 김 양을 데리고 남한에 입국, 원주에 정착했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어린 딸이 있었기에 한순간도 뒤돌아볼 겨를 없이 열심히 살았다.
평소 이따금 찾아오는 편두통에도 병원 가는 것을 뒤로 미루다 끝내 급성뇌출혈로 쓰러졌다.
졸지에 천애 고아가 되어버린 김양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이들에게 평소 김 씨 모녀의 신변보호를 담당해온 원주경찰서 보안과 직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찾아오는 조문객이 없어 외롭게 영정을 지키는 김 양의 안타까운 모습을 본 신변보호관 김광연 경위는 동료 경찰과 의기투합, 빈소를 마련해주고 텅 빈 장례식장을 교대로 지킨 뒤 화장터로 떠나는 마지막 운구까지 도맡았다.
하늘나라로 가는 김 씨의 마지막 여정까지 신변보호해준 것이다.
원주경찰서 보안협력위원회에서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사정을 설명, 장례비용 일부를 할인받게 도움을 줬다.
김 경위는 "목숨을 걸고 넘어온 자유대한의 품에서 열심히 살아온 고인이 어린 딸만 남기고 너무 빨리 떠나 너무 안타깝다. 고인에 대한 마지막 선물은 홀로 남은 어린 딸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계속 지켜주는 것"이라며 지속적인 보호와 지원을 약속했다.
ryu62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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