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 내 직장은 공연장이다. 전시·교육·축제·이벤트 등 다른 기능도 있지만 아무래도 공연이 중심이다. 공연장 중에서도 ‘공공공연장’이고 ‘복합공연장’이다. 대극장은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고 할 만큼 규모가 크다. 뮤지컬·오페라·연주회 등 다목적으로 사용한다. 중극장에 해당되는 M씨어터는 연극과 무용 등에 잘 맞는 중형 공연장이다. 가장 작은 체임버홀은 실내악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전통과 수준의 측면에서 자부심이 크지만 근거를 대라고 하면 애매하다.
세상에 같은 공연장은 없다. 각 공연장 자체도 다 다르지만 처한 환경이 같을 수 없다. 거창하게 말하면 물리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외부환경이 저마다 다르다. 건축물로서의 공연장이나 그릇으로 담는 예술작품이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좋은 공연장’이나 ‘나쁜 공연장’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공감은 하겠지만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수입이 많다고 꼭 좋은 공연장인 것도 아니다. 화제의 공연을 연속해서 올린다고 사랑받는 공연장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사정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예술현장에서 일하면서 해외에서 공연장을 둘러볼 기회가 많았다. 현장을 둘러보는 이유는 대부분 ‘뭐 배울거 없나’라는 의도에서다. 자꾸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례들마다 고민도 엿볼 수 있고 자랑거리도 발견한다. 우리가 당장 참고할만한 꺼리도 많다. 그러다 보면 나름대로 공연장을 보는 눈도 생긴다. 그런데 공연장의 수준과 형편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 중 하나만 들라고 하면 나는 ‘구내식당’이라고 말한다. 뜬금없다고 여기겠지만 내게는 그렇다.
공연장은 크게 관객 공간과 출연자 공간으로 나뉜다. 관객 공간은 객석을 비롯해서 로비, 식음료공간 등 관객이 이용하는 시설이 몰려 있다. 관객은 주로 이 공간을 공연장이라고 생각한다. 출연자 공간은 숨겨진 공간이다. 무대 뒷공간을 말한다. 통제구역으로 운영하는 예술인의 노동현장이다. 분장을 한 상태에서 돌아다녀야 하고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구내식당은 출연자공간에 들어 있다. ‘캔틴’이나 ‘카페테리아’로 불린다. 이 식당의 이용자는 출연자와 스태프다. 관객 공간을 이용하기 곤란한 사람들이 분장한 상태로, 일하는 중간에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이다. 구내식당은 특정한 기호를 가진 그룹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메뉴나 맛이 보편적인 편이다. 국제적인 공간이라면 더 그렇다.
경험에 의하면 구내식당의 성격과 수준은 해당 공연장의 그것과 거의 일치했다. 관료적인 운영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한 공공공연장에 있는 구내식당은 좁고 보잘 것 없었다. 음식 수준도 낮았다. 세계 최고(최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오페라하우스라 자부하는 공연장의 구내식당은 규모도 크지만 음식이 다양하고 수준은 높았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프랑스의 한 공공공연장 구내식당은 대학 카페테리아 같은 분위기였다. 공연장이 작아 무대 뒷공간에 구내식당을 갖추기 어려운 경우에는 로비에 있는 커피숍이나 레스토랑도 좋은 근거가 된다. 출연자와 스태프가 주로 이용하는 근처 식당도 비슷하다.
개인적 경험에 의한 경험론적인 주장이지만 합리화시키지 못할 것도 없다. 구내식당은 예술가와 스태프에 대한 공연장의 태도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배려와 존중 또는 연대감까지 말한다면 너무 나간 것인지 모르겠다. 공연장 운영의 전체적인 기조가 구내식당에 배어있는 것이다. 그 공연장의 무대뒷공간을 이용하는 예술가와 스태프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청와대 구내식당의 메뉴는 계란볶음밥, 메밀국수, 치킨샐러드, 배추김치, 열무김치였다고 전한다. 가격은 3000원이다. 사진으로 봤으니 맛을 알 수는 없다. 그 식당의 주요 이용자는 청와대 직원일 것이다. 외부에 있는 식당으로 나가기 어려울테니 공연장 백스테이지에 있는 구내식당과 다를 바 없다. 분위기에 따라 청와대 구내식당도 내용과 수준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 지금 같으면 직원들이 ‘회사 다닐 만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일단 좋은 공연장의 조건은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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