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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글로벌 포커스] 평창 올림픽은 한국에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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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 전후 스포츠 외교가

한·중, 한·소 국교 수립에 기여

문재인 정부의 북한 선수 초청 등

내년 올림픽 평화의 계기 되기를

중앙일보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한국은 내년 2월에 개막하는 2018 겨울올림픽의 주최국이다. 1988년 서울 여름올림픽 이후 20년 만이다. 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잔치는 단순히 스포츠 행사로 그치는 게 아니다. 올림픽은 종종 정치와 민족주의를 굴절시키는 프리즘 구실을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가 그렇다. 1936년 베를린 여름올림픽 마라톤에서 한국에 첫 번째 금메달을 안겨준 손기정(1912~2002) 선수는 시상대에 올라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받은 금메달과 남승룡(1912~2001) 선수가 차지한 동메달은 일본제국에 귀속됐다. 민족주의적 열정으로 불타던 당시 한국 신문들은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사진을 기사에 실었다.

88년 서울 여름올림픽은 한국이 이룩한 성과를 세계 만방에 과시하는 파티장이었다.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 동안 한국은 다시 태어난 민주주의와 수십 년에 걸친 노력으로 달성한 경제 성장의 열매를 한껏 보여줬다. 하지만 서울 여름올림픽은 한국 사람들의 자부심을 표상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었다. 지정학적인 함의가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치러진 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보이콧 사태로 말미암아 올림픽 정신이 심하게 훼손됐다. 80년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4년 후 소련은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함으로써 앙갚음했다.

서울 올림픽은 두 가지 중 하나로 귀결될 수 있었다. 서울 올림픽은 두 냉전 진영 중 한쪽만 참가하는 반쪽 올림픽을 하나의 전통으로 정례화시킨 올림픽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위태로운 추세를 단절한 올림픽이 될 수도 있었다. 한국인들은 두 번에 걸친 불행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역사상 유례없이 성공적인 스포츠 외교 사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소련 선수단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불참했지만 소련 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은 현장에 있었다. 한국인들은 소련의 서울 올림픽 참가를 성사시키기 위해 소련 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열띤 로비를 전개했다. 한국은 모스크바 필하모닉 교향악단이 서울에서 공연하도록 초청했다. 서울은 소프트파워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인센티브도 활용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Nordpolitik)’는 무역·투자·원조 등의 분야에서 소련이 한국과 가까워져야 할 이유를 제시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소련이 88년 올림픽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90년 한·소 외교 관계 정상화가 한결 쉬워졌다.

중앙일보

한국의 스포츠 외교는 한국의 대중(對中) 관여 정책에도 일조했다. 중국은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중국은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베이징은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아시안게임 같은 지역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야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아시안게임 같은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치러 본 경험이 전무했다. 중국 정부가 유혈 진압한 천안문(天安門) 사건 때문에 국제사회 대부분의 국가는 중국을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한국이 나섰다. 88년에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한국은 중국인들에게 실행 계획 마련, 광고 수입 운영에서부터 관중석의 열기를 이끌어내는 법까지 각종 유용한 조언을 제공했다. 스포츠 외교를 통해 구현된 한국의 선의가 중국에 통했다. 분격한 북한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결국 한·중 국교 정상화를 결정한 데는 한국의 스포츠 외교가 일정 부분 기여했다.

한국에 평창 올림픽의 의미는 무엇인가. 스포츠 행사 그 자체로서도 평창 올림픽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겨울올림픽을 개최한다. 겨울 스포츠를 확산하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입장에서 아시아는 매우 중요하다. 평창은 비무장지대(DMZ)로부터 불과 65㎞ 정도 떨어져 있다. 강원도는 군사분계선에 의해 2등분된 유일한 도(道)다. 북한 선수들은 일부 여름올림픽 종목에서 세계 수준이다. 하지만 북한 선수들이 겨울올림픽 종목에서 메달을 수확할 가능성은 낮다. 올림픽 본선 무대 출전권을 확보하는 것조차 힘들다. 문재인 정부는 IOC의 허락을 받아 북한 선수들을 참가시키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항상 그러하듯 갈등이 고조되는 암울한 시나리오도 있다. 북한은 87년 테러리스트들을 보내 여객기를 폭파했다. 북한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에 제2연평해전을 일으켰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으로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략적 상황이 어찌 됐건 모든 당사국이 ‘올림픽 휴전(Olympic Truce)’을 지켜야 한다. 내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17일간 펼쳐지는 평창 겨울올림픽의 대회 구호는 ‘하나 된 열정’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평화의 기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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