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토론은 후보들의 한계와 약점도 동시에 드러냈다. 지난 28일 상암MBC에서 개최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 TV토론회(5차)는 선거기간 중 공표가능 여론조사에 반영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TV토론은 이제 내달 2일 예정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 TV토론회 한 차례만 남았다.
지금까지 열린 총 5차례의 토론회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서는 높은 경험능력과 설득력 있는 논리를 보여줬지만 정책논쟁의 ‘디테일’(세부사항)에서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 경험을 바탕으로 외교안보의 정책 결정 과정을 설명하거나, 대통령으로서의 판단 기준을 얘기할 때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책과 공약 재원 등에 관해서는 꼼꼼한 수치 제시나 섬세한 논리전개가 미흡한 경우가 있었다. ‘공공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에 대한 설명 방식이 대표적이다. 후보마다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 원래 논쟁이 될만한 사안이었으나, 문 후보가 토론 초반부에 정확한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 공방을 키운 측면이 있다.
[사진=연합뉴스] |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5차례의 TV 토론에서 능란한 ‘프레임싸움’을 보여줬지만 ‘정책 콘텐츠’의 제시는 부족했다. 과거 논란이 된 사건을 반복적으로 끄집어 내며 TV토론을 정책 대결보다는 ‘정치 공방’으로 이끌어 간 것도 홍 후보였다. 홍 후보는 ‘좌ㆍ우파’ ‘주적’ 등의 표현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한 대립 구도를 만들고 상대 후보를 특정한 ‘프레임’에 가둬두려는 전략을 폈고, 일부는 효과적이었다. 홍 후보의 일부 거친 언행에도 불구하고 TV토론을 할 때마다 여론 조사 지지율이 조금씩 올라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점차 정쟁보다는 정책 토론의 성격이 강화될수록 홍 후보는 ‘콘텐츠 부족’을 드러냈다. 5차 TV토론에서 “가르쳐주면 하겠다”거나 “아직 공부가 덜 됐다”는 식으로 상대 후보 질문을 넘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갑철수” “MB아바타” “실망입니다” 등 발언으로 정치권 안팎과 여론에서 상당한 뒷얘기를 만들어낸 3차 토론회 이후 4~5차 토론에선 비교적 안정감을 보여줬다. 안 후보 정책과 기조를 흔들리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호소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특정의 문구를 반복한다든지, 수치나 각론의 제시없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표현으로 정책의 방향성 제시로만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구체적인 수치나 사례를 찾지 못해 상대 후보의 반문에 “여러가지…”라고 넘기는 대목이 있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TV토론이 시작된 후 언론과 전문가, 여론의 평가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토론우등생’이다. 특히 심 후보는 인지도 및 이미지 제고, 지지율 상승으로 TV토론 효과를 직접적으로 봤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 후보는 경제학자이자 국회 국방위원장 출신답게 경제와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 날카로운 논리력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노동ㆍ복지ㆍ조세 분야에서는 보수-진보 논리에 갇히지 않은 설계된 정책을 꼼꼼하게 설명해냈다. 하지만 상대 후보의 비판과 질문에서 특정 주제를 반복적으로 언급한 점은 일부 부정적인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심 후보는 TV토론의 사실상의 승자이자 최대 수혜자로 등극했다. 28일 발표한 한국갤럽의 4월 4주차(25~27일) 여론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4차까지의 토론회에서 가장 잘한 후보를 묻는 질문에 심후보가 가장 많은 답변을 받았다. 심 후보가 30%로 1위, 이어 문재인(18%), 유승민(14%), 홍준표(9%), 안철수(6%)의 순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심 후보의 대선후보 지지율이 7%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TV토론은 심 후보가 압도했다고 볼 수 있다.
심 후보는 홍 후보처럼 ‘프레임싸움’에도 능수능란했고, 정책 콘텐츠 제시에서도 빈틈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늘 수치와 통계를 인용해 ‘디테일’에도 강한 모습이었다. 특히 그동안 별로 ‘적수’가 안 보이던 홍 후보와 5차 때에는 맞대결을 해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심 후보는 홍 후보의 ‘담배세ㆍ유류세 인하정책’과 ‘강성노조타파’ 주장을 정면으로 맞받아쳐 홍 후보를 겸연쩍게 하거나 “모든 게 배배 꼬였다”는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심 후보는 ‘걸크러시’(여성도 반할만한 멋진 여성)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은 세대에게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강한 이미지가 높은 연령층 유권자에게는 반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 ‘유연성’을 더 보완하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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