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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윤석민의 팩토리] "한국은 중국의 일부"…또하나의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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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석민 대기자 =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했다며 전한 말이다. 트럼프는 자국 언론들로부터 ‘무지의 소치’라는 뭇매를 맞고도 더 이상 설명이 없고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애매모호한 답변만 내놓을 뿐이다. 한국민에게는 자존감이 걸린 엄청난 ‘언어 폭력’인데 우리는 속수무책 속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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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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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개되는 미중간 오고가는 언행도 예사롭지 않았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선제 타격설을 흘리며 대북 군사압박을 강화하는 한편 ‘북 후견인’ 중국에 대해서도 책임을 강하게 따졌다. 북폭설까지 나온 한반도 위기설은 지난 15일 북한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전후해 최고조에 달하고 인민군 창건일인 25일까지 이어졌다. 어쨌든 북한이 예상되던 6차 핵실험을 하지 않으며 일단 고비는 넘긴 감이다. 유례없이 호들갑스럽던 트럼프의 엄포가 제대로 통한 것인가.

그 과정서 가장 주목되는 사항은 중국의 변화였다. 중국 환구시보(글로벌타임스)는 22일 ‘북핵, 미국은 중국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어야 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선을 제시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국제판인 이 매체의 성격상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공식 '가이드 라인'인 셈이다.

환구시보는 북한이 중국 말도 안 듣는다며 투정도 부리더니 “한미가 38선(중국은 아직도 휴전선을 모르나)을 넘어 공격하면 즉각 군사 개입하겠다”고 강조했다. 일견 트럼프의 군사행동을 비롯한 한미 양국에 대한 강력 경고로 비치지만 이는 조중우호조약에 의해 그동안 당연시돼온 입장이다. 유사시 주한미군이 미국의 개입을 부르는 인계 철선이듯 중국도 이 조약에 따라 자동 개입이다. 더구나 중국은 현재도 한반도를 지배하는 정전(휴전) 협정 당사자중 한 측이다. 때문에 이 부분의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점은 다음 문장이다. 환구시보는 한미 무력에 의한 북한 정권 전복은 중국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할 ‘마지노선’이라고 강조했지만 “북한의 주요 핵시설 등에 대한 공격은 일단 외교 수단으로 억제하고 군사 개입은 불필요하다”고 예외를 제시했다. 이제까지 북핵 해법으로 ‘대화’만을 강조해왔던 종래 모습과는 완연한 태도 변화다. 사설은 타격시 북의 역공으로 참사가 우려된다는 점도 지적했지만 북핵 폐기를 위한 미국의 선제 타격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주목을 끌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이 기간 자신들이 고삐를 쥔 북한 ‘생명줄’인 석탄, 유류 공급을 적절히 이용해 위기 수위를 조절한 감도 없지 않다.

이같은 점에서 미국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대중 무역적자 등을 양보한다는 ‘빅딜설’도 나왔다. 입만 열면 무역적자, 환율조작, 일자리 도둑 등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차이나 배싱)’에 여념 없던 트럼프는 이제 ‘북한에 힘 있는’ 시진핑을 치켜세우고 환율조작국 지정도 없다고 못 박았다. 이 가운데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라는 발언도 나왔다.

활자화된 발언을 보는 순간 기분이 싸했다. 북핵 해결을 위한 미중간 모종의 합의가 어느 선까지일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까닭이다. ‘빅딜설’의 달콤한 당근이 중국을 움직였을까. 참전한 마오쩌둥의 아들까지 산화하며 지켜낸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보호는 이제까지 어떤 경제적 이득보다도 우선시해온 그들의 정치적 가치다. 북핵이라는 공통 위협 요인이 있다손 치더라도 속이 뻔한 트럼프의 ‘미친놈(mad man)’ 꼼수에 놀라 움직일 중국도 아니다.

분명 그 너머에 무언가 더 있을 것 같다. 중국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계기, 즉 북한 문제 해결의 ‘패러다임 체인지’가 엿보인다. 지금부터 얘기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팩트는 아니다. 의문점서 출발하는 시나리오다. 요즘 유행하는 합리적 의심에 따른 추론 정도로 봐 달라.

한반도 문제 해결의 변함없는 본질은 북핵 프로그램 백지화이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김정은이 핵 계획에 집착한다면 해법은 북한의 ‘레짐(정권) 체인지’이다. 그동안 보여 온 과정은 순탄치 않다. 북핵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잇단 경고와 제재에도 북한 핵무기 수준은 실재한 채 이를 고도화하는 막바지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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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생일 105주년(태양절) 맞이 대규모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진이 16일 노동신문에 보도됐다.(노동신문) 2017.4.17/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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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게 핵은 3대째 이어온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보루다. 앞서 걸프전(1차)서 사담 후세인의 기계화 백만대군이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압도적 첨단 화력에 한순간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북한이다. 북한은 고문단을 파견해 후세인 군대를 양성했었고 구소련제 T62전차, 미그29 전투기 등 같은 무기체계에 스커드 등 미사일 공동 성능개선에 나선 군사동맹이었다. (화학무기 분야도 공유했을 것으로 의혹을 받던 북한은 후세인 우상화 작업도 전수했다.) 전 인민의 무장화, 전 국토의 요새화를 통해 미국 등의 공격에 버틸 수 있다 생각했던 북한이 이후 찾은 대안이 핵무기다. 따라서 선대에 비해 카리스마와 정통성도 떨어지는 김정은은 안위가 보장되지 않는 한 절대 핵을 놓을 수 없다.

여기에 얽히고설킨 진영 논리는 실타래를 더욱 꼬이게 한다. 마치 북한을 사이에 두고 한·미·중 3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린 상황이다. 맞물린 3개의 톱니바퀴는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채찍과 당근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반도 딜레마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구도를 단순화하면 그림이 보인다. 2개의 톱니바퀴다. 가정조차 억울하지만 논의에서 우리(한국)만 빠진다면 의외의 순탄한 해법이 가능하다. 즉, 미국의 묵인하에 중국이 북한의 정권 변화를 유도하는 방안이다. 최근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번지는 김정은 망명 가능설도 이의 한 방안이다. 물론 북한에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친중 정권이다. 기실 한국민이 ‘우리의 소원’을 접고 헌법상 국토 조항만 폐기한다면 북핵 해결에 가장 좋은 그림 같다.

북한과 중국이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라지만 조언도 통하지 않고 핵을 개발하는 김정은은 중국에 분명 골칫덩이다. 다만 미국 등과의 대립 구도속에 북한 정권의 이변이 자칫 지역의 현상(status quo)을 해칠까 걱정이다. 만약 미국의 묵인만 있다면 김정은을 퇴출하고 북한에 친중 정권을 수립하는 일은 충분히 타산이 남는 장사다. 또한 누구보다도 확전 우려가 적은 저강도 해법이 가능하다.

중국을 내세워 손에 피를 안 묻히고도 김정은 정권을 몰아낸다면 미국으로서도 나쁠 이유가 별로 없다. 어치피 ‘호전적이고 불가측한’ 북한 정권은 미국에 있으면 아프기만 한 맹장 같은 존재이다.

우리로서도 감정만 추스른다면 굳이 해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 ‘NK 리스크’ 제거 등 되레 이득도 보인다. 최소한 대화가 통하는 중국과 타협을 잘해 일대일로의 한 끝을 맡고 홍콩식의 국제 허브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미국은 중국 봉쇄의 교두보이자 최전선인 우리에게 엄청 잘 할 것 같다. 그리고 북한과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은 신뢰의 관계를 쌓아갈 것이다.

이상이 나른한 봄날 펼쳐본 가상의 나래다. 다만 ‘코리아 패싱(passing)’이라는 조어가 나올 정도로 주변 정세 논의에 한국만 왕따당하는 기분은 의구심을 쉽게 잠재우지 않는다. 5월9일 선택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b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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