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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아주초대석] 신종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장애·비장애 벽 허물고 예술로 하나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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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은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열매를 맺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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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지난 20일은 제37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각 기관·기업들은 장애인을 위한 행사와 캠페인을 벌인다. 이들 대부분은 장애인 인권, 이동권, 복지 등에 초점을 맞춘다. 문화·예술은 여기에서도 '찬밥'이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사장 신종호)은 지난 2015년 10월 장애인의 예술 교류와 소통, 문화예술 진흥 등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문을 연 장애인문화예술센터 '이음'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에게 문화예술은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던 2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신종호 이사장을 만났다.

◆ "장애인의 날 필요없는 세상 와야"
신 이사장은 "장애인의 날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입을 뗐다. 장애인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그들과 함께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런 날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어린이날에만 잘해주려 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는 "사회에 어떤 형태로든 기여를 할 수 있는 게 장애인"이라며 이날 기념식에 다녀온 소회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신 이사장은 "올해는 감회가 남달랐는데, 특히 장애인예술원 이사장으로 오기 전 장애인에게 느꼈던 것과 이후의 그것이 조금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비올라를 전공한 음악인으로, 50여년간 국내외를 넘나들며 연주를 해왔다. 그가 특정 조직의 수장이 되기 전 느꼈다는 것은 예술인으로, 또 장애인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는 "피땀 흘리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었다"며 "지금은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그들이 한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방안을 늘 구상한다"고 말했다. 1년 365일이 장애인의 날이자, 비장애인의 날이면 좋겠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신종호'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장애인예술원과 장애인문화센터 '이음'은 2015년 나란히 문을 열었다. 특히 이음은 스튜디오, 전시실, 연습실 등 쾌적하고 편리한 시설을 갖춘 곳이지만 대학로에 있다는 사실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신 이사장은 "장애인예술원 같은 기관은 외국에선 대부분 민간이 주도해서 세우지만,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로 설립됐다"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존재"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곳이 장애인은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그는 "초대 이사장으로 부임한 뒤 다양한 사업 등으로 장애인예술원을 알렸지만 아직 설립 2년도 채 되지 않아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이음'이라는 말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주고 소통시키면서 동시에 '다른 음'을 화음으로 만들 수 있는 앙상블 같은 역할을 하면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장애·비장애 하나되는 사업에 적극 나서
장애인예술원이 오는 5월 21일까지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하는 '2017 이음 축제'는 아트마켓, 공연,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 이사장은 이음 축제 얘기에 몸을 앞으로 바싹 당기며 "문화예술을 통해 소통하고, 능동적인 행동주체로 장애인 인식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통합의 장이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비장애인들에게 이음이 어떤 곳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이곳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마로니에공원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며 "내달 초엔 이스라엘 대사관이 그들의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전시와 세미나를 열고, 야외무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며 대중의 많은 관심을 기대했다.

신 이사장은 평소 '사람들은 다 예비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 들면 힘이 없어서 지팡이를 짚거나 교통사고, 산재 등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하는데, 장애인 처지에서 가장 좋은 직업군을 고르라면 단연 문화예술 부문을 꼽고 싶다"고 말했다. 1950~60년대를 살아봤던 그가 '장애인의 직업'으로 기억하는 것은 시계 수리, 도장 제작 등의 일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장애를 보는 인식이 꽤 달라졌고, 실제로도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며 "개성 넘치는 개인으로서 장애인이 펼칠 수 있는 무대는 문화예술에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국내 첫 창작뮤지컬 '비상'의 제작발표회가 있었다. 작품 자체도 화제였지만 배우 황정민씨가 홍보대사로 위촉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신 이사장은 "여러 문화 활동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뮤지컬이 대세라고 생각한다"며 "장애인의 스토리가 담긴 뮤지컬 제작이 내 오랜 바람이었다"고 웃었다. 실제로 그는 지난헤 첫 작품으로 ‘조다밴’(조금 다른 밴드)이라는 그룹사운드를 기획한 바 있다. 그는 "오는 11월엔 '비상'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텐데, 한국 뮤지컬로서 맘마미아, 캣츠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음악적인 면에서도 세계적인 작품이 될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장예인예술원은 지역 문화예술 단체를 지원하는 일에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2013년 법인 단체로 정식 설립될 정도로 주목을 받은 인천의 장애인 우쿨렐레 동아리 '무한도전'에도 매년 국고보조금을 지원 중이다. 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장애인문화예술향수 사업으로 25억원 정도를 지원하던 것인데, 올해부터 장애인예술원이 담당하고 있다. 신 이사장은 "전국의 연주, 공연, 전시 등을 지원하는데 예산 집행을 처음으로 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며 "전국 각지에서 지원 요청을 하지만 예산 한계가 있어 다 지원을 하지 못하고, 요구한 금액을 다 줄 수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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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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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원 설립은 '장애인 예술가의 르네상스' 원년
이음 센터는 지하 1층 연습실부터 5층 아트홀(스튜디오)까지 장애인들이 연극, 교육, 전시 등 문화예술 활동을 불편함 없이 할 수 있도록 맞춤형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젊음, 문화, 자유 등으로 대변되는 대학로에 이음 센터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아쉬운 부분은 있을 터. 신 이사장은 "여기에서 1년 반 정도 살아 보니, 장애인 전용 극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대학로 극장들은 경제적 이유 등으로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된다. 이음 센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가령 장애인 100명을 들일 수 있는 극장을 갖추려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휠체어 100대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무대가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다. 신 이사장은 "현재 아트홀은 80~100석 규모라 장소의 한계를 느끼고, 또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하다 보니 화장실, 엘리베이터 등이 많은 공간을 차지해 장소 활용폭이 제한적"이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장애인 단체 일각에선 예술원과 이음 센터가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 혜택이 특정 지역 또는 특정 연령대에만 치우친 것은 아닌가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신 이사장은 "사회주의 국가라면 일정 액수를 모두에게 균등하게 나눌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며 "다만, 혜택 받은 사람만 계속 받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는 의식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장애인예술원 지부 형성, 시범적 예산 배분 등으로 지방에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예술원도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고 있다. 그중 올해 특히 주안점을 두는 것은 무엇일까. 신 이사장은 "그동안 여러 장애인 예술단체가 '아름다운 이음전' 등을 진행해 왔는데, 앞으로는 질과 양 모두 높은 수준의 공연을 하는 게 큰 목표"라며 "지역주민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해설이 있는 영화, 뮤지컬, 오페라 등도 상황에 맞게 추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가 인터뷰에서 두세 차례 강조한 것은 '노력과 보상의 불균형'이었다. 장애인 예술가들이 국내외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도 경제적인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딜 가도 대접을 못 받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가 꿈꾸는 미래는 '장애인 예술가들의 르네상스'다. 장애인예술원 설립은 그 원년인 셈이다.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미래는 꿈과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부인하지 말고,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 열매가 맺힙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선 먼저 자신을 감동시켜야 남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물고 예술을 매개로 우리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박상훈 bomnal@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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