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대규모 세제개편안을 드디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법인세를 단숨에 20%포인트 내리고, 개인소득세 과세 구간을 7단계에서 3단계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상속세는 아예 폐지할 방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 100일 직전에 파격적인 감세안을 발표해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프로 비즈니스(pro-business)' 정책 의지를 다지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재정적자 우려 등 회의적인 의견이 불거지고 있어 의회 처리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워싱턴 정가는 세제개편안의 원안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을 통해 "이번 세제개혁안은 미 역사상 최대의 감세이자 세금 개혁이며 이를 통해 미국 경제가 3% 이상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인세율 인하는 '친(親) 비즈니스'를 외치는 트럼프노믹스의 상징과도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법인세를 확 낮추겠다고 공언해왔다.
미국의 법인세율이 높다는 건 민주당도 동의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법인세를 28%로 낮추는 방안을 지지했다. 15% 법인세율이 통과될 경우 미국은 단숨에 영국·일본·독일 등 경쟁국들을 제치고 아일랜드(12.5%) 수준의 법인세를 갖게 된다. 이를 통해 조세피난처를 찾아 미국을 떠났던 기업들이 미국으로 회귀하는 걸 기대할 수 있다.
개인소득세는 현재의 10%, 15%, 25%, 28%, 33%, 35%, 39.6% 등 7단계에서 10%, 25%, 35% 등 3단계로 간소화하기로 했다. 다만 소득 구간이 어떻게 적용될지는 이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의 평소 지론대로 상속세와 대안적 최저한세는 폐지할 방침이다. 대안적 최저한세는 부자들이 기존 세제를 우회해 절세하지 못하도록 미 정부가 도입한 부가적 소득세제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비난해왔다. 트럼프는 이 세제 때문에 2005년 3100만달러(약 351억원)의 소득세를 추가로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패스스루(Pass-through)' 기업에 적용되는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기존 39.6%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한 점도 눈길을 끈다. 자영업자, 헤지펀드, 부동산개발업체, 법무법인 등 이른바 패스스루 기업은 기업의 이익이 소유주의 개인소득으로 분류돼 법인세가 아닌 개인소득세를 납부해왔다. 이번 개편안에선 이들 기업도 인하된 법인세율(15%)을 적용받도록 한 것이다.
월가는 트럼프의 이 같은 감세가 기업가정신을 자극하고 미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뉴욕증시가 뜨거운 상승 랠리를 펼쳤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월가의 거물'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은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면서 "법인세 인하는 미국을 훨씬 경쟁력있게 만들 조치"라며 "감세와 규제완화 등의 '프로 비즈니스' 조치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더욱 오르고 미국 경제 사이클에서 매우 특별한 시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 있는 2조달러 이상의 미국 기업 자금을 본국으로 귀환시키기 위해 한시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방침도 미국 재건의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슈워츠먼 회장은 예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제개편안에서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비축한 대규모 수익을 미국으로 송환할 때 내는 일회성 '본국송환세'의 세율을 이날 언급하지 않았다. 미 언론들은 본국송환세율이 10%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미국 내 수익뿐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도 35%의 법인세를 부과하면서 이를 본국에 들여오기 전까지 세금 납부를 미룰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많은 미국 기업들이 법인세 폭탄을 피하기 위한 '해외 파킹'을 관행적으로 지속해왔다.
경제 활성화 취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세제개혁은 당분간 상당한 논란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전망이어서 '셀프 감세' 논란이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패스스루 기업 감세가 대표적인 예다.
부유층이 훨씬 많은 혜택을 본다는 반대 세력의 비난을 의식한 듯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저소득·중산층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개인별 과세대상 소득에서 기초공제 액수를 2배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행 공제액은 1인당 6350달러(약 720만원), 부부는 1만2700달러(약 1440만원)씩이다. 개편안이 적용될 경우 부부 기준 공제액은 2만4000달러로 늘어난다. 또한 연 가구소득 2만4000달러 이하 구간은 소득세를 면제해줬다. 대부분의 세액공제 항목을 폐지했지만 미국 가정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택담보대출과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는 유지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대규모 감세로 인한 재정악화 우려는 의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민주당뿐 아니라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공화당 내에서도 공격의 대상이 될 여지가 크다. 미 의회 합동조세위원회는 법인세율이 20%포인트 떨어지면 10년간 연방정부 세수가 2조달러(약 2268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경조정세를 신설해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에 따른 세수 결손분을 보전할 방침이었지만 국경세 도입이 좌절되면서 재정 여력이 취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일각에선 "경제 활성화로 부족한 세수를 보충한다는 건 순진한 발상"이라는 쓴소리를 서슴지 않고 있다.
트럼트 정부는 세제개편안 통과를 위해 '예산조정절차'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상원 60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일반적인 입법 프로세스와 달리 조세, 재정지출, 연방부채 등과 관련한 법안을 과반의 찬성으로 통과시키는 제도다. 하원에선 과반 이상이면 법안 통과가 가능하지만 상원에선 100명 중 60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미 상원 100석 중 52석을, 하원 435석 중 237석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예산조정절차를 활용해 통과된 법안이 세수를 감소시키면 그 법안은 10년 후 소멸한다는 단서가 있다는 점이 트럼프 정부로선 고민이다.
한편 므누신 재무장관은 트럼프 정부가 제시한 최대 규모 세금감면안이 '부자 감세'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용이라고 주장했다. 므누신 장관은 27일 NBC방송 인터뷰에서 "세제개혁안의 세부 계획은 세금을 낮추고 세제를 간소화하는 것"이라며 "중산층의 감세, 전면적인 감세, 역사상 최대 감세, 역사상 최대 세제개혁 프로그램이며 미국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에 관한 구상"이라고 말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임영신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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