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 |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 청동기시대 석검 출토 |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 봉수대 건물지 |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 연조시설 |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 근대 일본자기 |
【통영=뉴시스】신동립 기자 =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에서 청동기 시대 해안 제사유적,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일 때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이 관할한 봉수대 시설, 러일전쟁 신호소 유적이 확인됐다.
통영 한산도 봉수대는 한산도 정상(293.5m)의 망산(望山)에 있다. 정확한 문헌기록이 없어 주민의 전언 등을 통해 한산도 옛 진영인 통제영이 설치됐던 시기에 운영된 봉수대로 알려져 왔다.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체계적인 조사는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산243 망산 정상부 봉수대의 내부를 조사, 청동기 시대 대표 석기인 간돌검(磨製石劍) 1점이 들어있는 구덩이(竪穴)를 찾아냈다. 부안 계화도유적, 여수 세구지유적, 서천 옥북리유적 등과 같이 풍어와 해상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른 청동기 시대 해상 제사유적이다.
망산 정상부에 축조된 연조(煙竈), 즉 불을 피워 연기나 횃불을 올리던 굴뚝은 기반암을 凹(요)자형으로 굴착해 만든 수혈식이다. 평면은 원형이다. 조선 시대 봉수체계는 5개 연조 신호체계다. 4개소를 확인했으므로 1개소가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봉수대 안에서는 러일전쟁 당시 신호소도 확인됐다. 해상감시, 선박교신, 기상관측, 인접 신호소나 통신소와 연락을 하는 곳이다. 신호소 내부에서는 당시 일본 규격의 붉은 벽돌과 석탄, 일본 자기 완(碗), 시세이도 제품인 크림치약 용기 등이 나왔다. 벽체와 지붕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후 일본 군부가 봉수대 관련시설을 신호소로 급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망산봉수대를 발굴조사한 경상문화재연구원은 “한산도 망산봉수대는 한 장소에서 청동기 시대 제사유적, 조선 시대 봉수의 핵심시설, 러일전쟁 시 일본 군부가 사용한 신호소 유적이 골고루 확인돼 한반도 주요 군사시설의 상징적인 장소로서 역사·지리·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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