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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김주영 작가 “문학의 최종 목표는 독자에 대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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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완간 후 첫 장편 ‘뜻밖의 생’

밑바닥 살면서도, 찡그리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

소설은 어쩌면 자서전…늙었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경향신문

신작 장편 <뜻밖의 생>을 낸 김주영 작가.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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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등단 47년을 맞은 노작가조차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김주영 작가(78)가 장편 <뜻밖의 생>(문학동네)을 내놨다. 2013년 <객주> 10권을 완간한 이후 첫 장편소설이다.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시골 툇마루에 앉아 해바라기하고 있을 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십수년 전에 한 방송사와 함께 러시아를 횡단한 적이 있다고 했다. 마침내 모스크바에 도착한 그날엔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방송 촬영이 불가능해지자, 김 작가는 반드시 가고 싶었던 장소였던 붉은광장으로 향했다. 제정러시아 황제와 장군의 동상들이 즐비하게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러다 한 구석에서 칠이 벗겨진 초라한 동상과 마주쳤다. 동상 아래에는 아름다운 생화 3송이가 놓여 있었다. 안내인에게 물어 보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 동상 아래에는 생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황제와 장군의 동상 아래에는 없는데, 왜 이 동상에만 꽃이 있을까.

동상의 주인공은 시인 푸슈킨. 꽃은 그를 존경하는 시골의 촌부들이 가져다 둔 것이었다. 촌부들은 고향에서 꽃을 꺾어서는 기차를 타고 며칠을 걸려 모스크바로 향한다고 한다. 그리고 시들까봐 고이 모셔온 꽃을 푸슈킨 동상 아래 바친다. 김 작가는 푸슈킨의 대표시를 읽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약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이 시의 주조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이 시를 암송했지만, ‘위로’가 주제라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문학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국가적인 문제를 고발할 수도 있고, 이성, 사랑, 아름다움, 종교를 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문학의 최종 목표는 작품을 읽는 사람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아직 제 마음 속에 도사린 숙제고 제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뜻밖의 생>은 항구에서 노숙을 하는 노인 박호구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노인은 도박판에 목숨 건 아버지, 무당을 믿는 어머니 사이에서 어렵게 자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아본다. 박호구를 위로한 것은 이웃집 단심이네가 키우던 당나귀처럼 큰 개 칠칠이. 터미널에서 노숙을 하는 호구는 칠칠이의 체온으로 몇 번의 겨울을 보낸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작가가 전하려는 말은 “삶에는 언제나 고난보다 방법이 더 많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밑바닥을 살면서도 얼굴 찡그리지 않고, 때리면 맞고 밀면 앞으로 나아가는 고귀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제 체질이 잘나고 어깨 힘주는 사람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어둡고 추운 곳에 사는 사람에게 애정을 느낍니다. 제가 그렇게 살았거든요. 소설은 어찌 보면 자서전입니다. 아무리 많이 조사하고 취재한다 해도, 자전적 요소가 없으면 독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차기작 계획을 묻자 김 작가는 “늙어서 속도가 느릴지는 모르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는 있다”고 답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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