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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카메라에 담은 좁은방의 삶…심규동 사진집 '고시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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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강릉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그곳에서 졸업한 23살 청년은 친구와 함께 무작정 상경했다. 고시텔이라는 곳이 널려 있다고 들어 방은 알아보지도 않고 왔다.

지하철 2호선 봉천역 주변에 보증금 없이 월 30만원 고시텔을 계약했다. 다리를 겨우 펼 수 있는 좁은 방에서 시작한 고시텔 생활은 4년여간 여러 곳의 고시텔을 전전하는 생활로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청년은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행 잡지사에 기자로 취직하기도 했다. 친구에게 빌린 100만원을 갚느라 헬스장 아르바이트도 했고 웨딩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를 하기도 했다.

간호학을 전공했지만 간호사가 되기는 싫었던 청년은 사진을 찍었다. 스튜디오에서 웨딩사진 찍는 일에 권태를 느낀 청년은 어느날 고시텔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좁은 복도와 벌집같이 다닥다닥 붙은 방들, 공동주방과 욕실, 화장실, 그리고 고시텔에 사는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신예 사진가 심규동(29)의 첫 사진집 '고시텔'은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모은 것이다.

바랜 듯한 색감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불편한 느낌을 준다. 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침대와 음식 찌꺼기가 눌어붙은 그릇들, 옷가지 등 살림살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방의 모습은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풍경이다. 선뜻 들어가기 꺼려지는 분위기의 공용 화장실 사진에서는 왠지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사진의 음울함은 실제 그 곳의 주민이었던 작가의 감정이 배어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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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3일(왼쪽),8월2일에 찍은 사진. 왼쪽 사진 속 인물은 작가 자신이다. [눈빛출판사 제공]



작가는 왜 고시텔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그간의 고시텔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곳에 10년 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내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결혼을 안 할 것이고, 그럼 자녀도 없을 것이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내 미래였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어야 했다. 희망을 잃고 현실감까지 잃은 것인지 알아야 했다"('사진가의 노트' 중)

현실감은 고시텔 사람들 간에 시비가 붙어 경찰이 출동했을 때 다가왔다. 작가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경찰이 '그저 고시텔 사는 사회부적응자에 범죄위험인물'로 경멸하듯 바라본 순간 그곳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처참히 무너졌다고 고백한다.

시인이자 사진가인 신현림은 심규동의 사진에 대해 "허물까지 보이는 이 대담함이란! 어쩜 감추고 싶을 공간, 자기 약점일 수 있는 그 여린살까지 드러내 보여 관객의 눈길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면서 "그의 사진을 통해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읽게 된다"고 평했다.

작가는 다음달 8∼12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고시텔 사진으로 전시회를 연다. 128쪽. 1만2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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