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최보기의 책보기] 노래하는 칼의 귀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훈 장편소설 ‘공터에서’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대개 독자들이 어떤 저자에게 꽂힐 때는 특별한 문장에서부터 그 꽂힘이 시작된다. 필자는 김훈의 오래된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에 나오는 저 문장으로 인해 그에게 처음 꽂혔었다. ‘밥’은 김훈의 작품 어디에서든 수시로 등장할 만큼 우리에게 중요하다.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라서 ‘칼의 노래’ 이순신은 군량미를 걱정한다.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나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 있는’ 밥이 그토록 슬픈 이유는 ‘저축이 되지 않아서, 내일의 밥을 벌기 위해 오늘의 밥을 목구멍에 꾸역꾸역 넘겨야 해서’다. 그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의 1부 제목 또한 어김없이 ‘밥’이다.

김훈의 문장을 대하면 마치 아마추어의 노래를 듣다가 ‘세시봉 송창식’의 노래를 듣는 것 같다. 자전거 행렬 뒤로 탱크가 밀고 나오는 듯한 육중함과 박력이 그만이다. 그 육중함과 박력은 이순신 장군을 다룬 소설 ‘칼의 노래’에서 독보적이다. 장군의 검(劍)에는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가 새겨졌다.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선조에게 국문을 당한 후 백의종군을 위해 전라도로 다시 내려온 장군에게 도원수 권율이 말한다. “자네, (섭섭한가?) 서울 의금부에서의 일들은 다 잊어버리게. 무인이란 본래 그래야 하네.” 장부들의 이 유장함이 곧바로 김훈의 문체에 닿는다. 그래서 필자는 글쓰기 수련을 위해 김훈의 글들을 필사한다.

김훈의 책들을 읽다 보면 글쓰기에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다. 실제로 그는 관찰을 위해 망원경과 루뻬(그림 등을 자세히 보는 확대경)를 늘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산문집 ‘자전거 여행’의 수련(睡蓮)이 피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글에서 그는 ‘숨 막히는 허송세월’이라는 압축적 표현으로 관찰을 말했다. 그의 관찰은 ‘세월호’를 말하는 신문 칼럼에서도 우뚝 눈에 띄었다.

김훈의 신간소설 '공터에서'의 주인공은 1910년 태어나서 조국을 떠나 상해와 만주를 떠돌다 해방 후 귀국해 6.25전쟁과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겪는 마동수. 1.4후퇴 때 흥남 부두에서 남편과 딸을 잃으며 가까스로 미군의 엘에스티(LST, 미국의 상륙 작전용 함정)에 올라타 부산에 도착, 마동수를 만나 가마니를 깐 축사에서 두 아들을 낳아 기른 이도순. 전쟁 통에 태어났던 그들 부부의 두 아들 ‘마장세, 마차세’가 겪는 산업화 시대까지 2대에 걸친, 20세기의 험난하고 지난했던 역사가 김훈 특유의 육중한 문장으로 압축됐다.

읽기를 권장할만한 김훈의 책들은 많다. 이미 김훈을 아는 독자라면 '공터에서'는 당연하다.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그의 다른 책들을 함께 읽는 것도 절대 나쁘지 않다. 소설이라면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소설 ‘칼의 노래’가 좋겠다. 김훈은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를 놓고 오래 갈등하다 “결과를 암시하는 ‘은’ 대신 ‘이’를 썼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글쓰기는 치밀하다. 에세이라면 ‘자전거 여행’을 첫째로 치겠으나 ‘밥벌이의 지겨움’을 빼기가 못내 아쉽다. 행여 출판사에서 이 서평을 읽거든 필자가 인왕산에서 진행하는 ‘저자와의 산정만찬’에 ‘공터에서’ 저자가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사족으로 써둔다.

◇공터에서/ 김훈 지음/ 해냄/ 1만4000원
ungaungae@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