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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글로벌워치]한중 관계 봄날 꿈꾸는 교민의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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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25일(현지시간) 전 세계 외교 공관에서 재외국민 투표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해외에서 참정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유권자만 30만명에 육박한다. 재외 선거 사상 '역대 최다' 기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재외 선거권자 197만여명의 15%에 해당하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중국 베이징에서도 이날 오전 8시부터 재외 투표소가 설치된 주중 한국 대사관을 찾는 유권자의 발길이 이어졌다. 날은 춥고 길은 얼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예년의 12월 대선 표정과 달리 두 계절 앞서 치러진 이번 조기 대선은 포근한 날씨 덕분인지 유권자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재외 선거 유권자의 절대 다수는 교민이다. 중국의 경우 외국인에 대한 영주권 발급이 사실상 막혀 있기 때문에 최소 1년 단위로 비자를 연장하면서 힘겹게 정착한 기업인이거나 유학생, 주재원 등이다. 고국도 아닌 타국에서, 비정상적인 국가 위기 상황에서 투표에 참여한 이들의 표심은 어떤 의미를 담아 어떤 후보에게 향했을까.

최근 몇 달 새 중국에서도 틈만 나면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을까"가 화두였다. 중국인도 궁금해 묻는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에 따라 잠시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결국 귀결되는 공통분모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다.

'사드로 냉랭해진 한중 관계를 누가 지혜롭게 풀 것인가'는 일부 교민에게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 이번 대선 재외 선거에서 중국(4만3912명)이 처음으로 일본(3만8009명)을 제치고 미국(6만8244명)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많은 유권자를 집결시킨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통상 일본의 재외 선거인 수가 중국보다 10만명 이상 많기 때문에 이례적인 결과다.

고위 외교관은 "중국에서 투표 신청자가 많아 우리도 놀랐다"면서 "중국의 사드 보복을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영업에 종사하는 교민을 중심으로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 새 세상을 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전했다. 사드 후폭풍으로 매출의 70%가 급감했다는 한 교민은 "중국 생활 17년 만에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힘 있는 내 편이 없다는 자괴감이었다"면서 "누가 되든 한중 관계를 최소한 원점 가까이로 돌렸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동안 한국은 없었다. 그 사이 미·중·일 정상은 상견례를 마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 외교'로 친분을 쌓고 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최근 만난 자리에서 "중국 정부 외교 라인에서 1박 2일이든 시간을 내 한국 대선 후보 캠프와 접촉하는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이미 사드 출구 전략을 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새 대통령은 차기 우리 정권과 관계 회복을 바란다는 중국의 속뜻을, 교민의 소중한 한 표를 생각해서라도 잘 헤아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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