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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330년전 불랑기 발굴, 최전선 지킨 서양식 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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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불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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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포좌에서 발견된 불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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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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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시스】신동립 기자 = 불랑기(佛狼機)의 포신인 모포(母砲) 1문이 확인됐다. 강화군과 인천시립박물관이 인천 강화군 양도면 건평돈대(乾坪墩臺·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8호)를 발굴조사한 성과다.

돈대는 병자호란 이후 유사시 왕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외적의 침입과 움직임을 탐지하고 상륙을 저지할 목적으로 쌓은 조선 후기 대표적 군사시설이다. 1679년(숙종 5) 강화도 해안 요충지에 48개, 이후 6개를 추가로 쌓아 총 54개에 이른다.

건평돈대는 당시 건설한 돈대 가운데 하나다. 강화도의 각 돈대에는 비상시 적을 방어하려고 포좌 2~4개를 설치하고 불랑기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조선 중기 문신 이형상(1653~1733)의 ‘강도지(江都誌)’에 남아 있다. 이번 불랑기가 실체를 확인해준 셈이다.

불랑기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식 화포의 일종이다. 포문으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전통 화포와는 다르다. 현대식 화포처럼 포 뒤에서 장전을 하는 후장식이다. 포신인 모포와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로 분리돼 있다. 모포 뒷부분에 자포를 삽입한 뒤 불씨를 점화해 발사한다. 보통 모포 1개에 5개 자포가 한 묶음을 이루면서 빠른 속도로 연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불랑기는 2009년 서울시 신청사 터(군기시)에서 출토된 자포 1점(보물 제861호·1563년 제작)을 제외하고 출토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평돈대 불랑기는 실전 배치 장소에서 확인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포신의 명문에 불랑기의 제작 기관, 감독 관리와 장인의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어 1680년(숙종 6)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제조 관청도 확인돼 조선 시대 무기사와 국방 체계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다.

‘康熙十九年 二月 日 統制使全等江都墩(皇)上佛狼機百十五 重百斤 監鑄軍官 折衝 申淸 前推管 崔以厚 前萬戶 姜俊 匠人 千守仁’(1680년·숙종6 2월 삼도수군통제사 전동흘 등이 강도돈대에서 사용할 불랑기 115문을 만들어 진상하니 무게는 100근이다. 감주군관 절충장군 신청,전추관 최이후, 전만호 강준, 장인 천수인)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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