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의 생각-26]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의 신(神)으로 불리는 사람이 두 명 있다. 동양과 서양에 각각 한 명. 서양에는 그 유명한 나폴레옹. 그리고 동양엔 베트남 전쟁 영웅 보응우옌기업 장군이다. 이들 두 장군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그건 기습과 창의성이다. 상대방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후세에 '나폴레옹 전술'이란 용어가 만들어져 미국 웨스트포인트 등 전 세계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채택했다. 그를 '전쟁의 신'이라 부른 인물은 독일의 군사전략가인 클라우제비츠. 그는 '전쟁론'이란 책에서 나폴레옹의 창의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나폴레옹 본인은 "전략은 시간과 장소를 활용하는 예술"이라며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게 중요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더 빨리 움직여 더 강하게 타격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베트남의 보응우옌기업. 그는 프랑스, 미국 등 강대국과 싸워 패한 적이 없는 장군이다. 그가 타계했을 때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존경하는 명석한 군사 전략가"라고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군사전략은 이른바 3불 전략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적이 원하는 않는 시간에, 적이 원하는 않는 장소에서, 그리고 적이 생각하지 않는 방법으로 싸운다"이다. 그래서 그의 전술은 창의적이다.
나는 이들 두 장군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북한을 떠올린다. 그리고 북한이야말로 우리가 한번도 예상했던 대로 움직인 적이 없다. 모두 우리의 허를 찌르는 도발이었고 북한으로선 창의적이었다.
굵직한 도발들을 열거하면 그 유형은 한결같지 않다. 그러나 공통점은 허찌르기, 뒤통수치기였다. 1983년 10월, 북한은 중국을 통해 미국과 힘을 합쳐 한반도 긴장 완화에 노력하자는 평화 제스처를 보낸다. 바로 그 다음날 아웅산 사건이 터졌다. 1986년 9월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6일 전 북한은 김포국제공항 쓰레기통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런 도발에 3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민간 비행기를 폭파하고, 도끼로 군인을 찍었다. 누가 잠수정에서 어뢰를 발사해 천암함을 폭침시킬 줄 알았으며, 대낮에 연평도에 대포를 쏴대리라고 누가 예상했겠으며, 비무장지대(DMZ)에 목함 지뢰를 매설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당하고 나서 야비하니, 비열하니, 그럴 줄 몰랐다느니 말해본들 소용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정부나 군 당국이 오히려 한심하다. 북한이 원래 그런 줄 몰랐느냐고 묻고 싶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당한 지 442일이 지나 테러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초당파적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로부터 603일이 지난 2004년 7월 22일 사건의 전말을 밝힌 567쪽의 보고서가 발표된다. 250만쪽의 관련 서류를 분석하고, 1200명을 인터뷰하고, 19일간의 청문회와 160명의 공개 진술을 들어 작성된 보고서였다. 9·11 테러를 전후해 벌어진 일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뒤 뭐가 잘못돼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분석과 처방을 내놓았다.
그중 중요한 요인이 상상력의 부족이었다. 테러를 예고한 여러 징후들이 있었지만 그걸 종합해 어떤 일이 터질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을 못했다는 것. 조각 조각들의 정보를 연결하지 못한, 보고서 표현을 빌리자면 점(點)을 선(線)으로 잇지(connecting the dots) 못한 국가시스템의 실패라는 결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방어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여러 정보들이 있지만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라는 선입견에 애써 둔감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 자체를 불온하게 여긴다.
독일 문학계의 거장이자 20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인 슈테판 츠바이크. 그가 머나먼 이국땅 브라질에서 그와 오랜 시간 같이한 여비서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집필한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 그는 여기서 상당 부분을 할애해 1차 세계대전에 대해 기술했는데 그의 기준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었던 일, 이성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바로 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는 "이성과 합리가 인간의 광기를 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나의 과신이었다"며 스스로 오판을 인정한다.
츠바이크의 때늦은 후회를 대한민국이 하면 안 된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 지난달 매일경제와 세종연구소가 발표한 안보보고서에 나오는 말이다.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의 명언으로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하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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