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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올빼미족이 한심하다고?…'호모나이트쿠스'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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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족보다 더 똑똑·창의적"…다양한 생체리듬 존중, 유연근무 활성화돼야]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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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00:00. 텅 빈 차도를 쌩쌩 달려 24시간 마트에 도착했다. 손님이 거의 없어 장을 보고 계산하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 집에 돌아와 요리를 하고 저녁 식사를 평화롭게 마쳤다. 커피 한잔을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내린 후 번역물을 처리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고요한 밤, 집중력은 최상이다.



AM 4:00. 번역을 마치고 출판사에 보낼 메일을 완성했다. 전송 버튼을 바로 누르지 않고 오전 9시 발송으로 예약했다. 마치 일찍 일어나 메일을 보낸 것처럼. 밤늦게 일하는 올빼미족이 게으르고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다.



#이번 학기 학과 수석이 그 지각쟁이 A씨라니. A씨는 오전 9시 시작하는 1교시 수업에 제때 도착한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매번 지각을 한다. 게을러서 성적이 나쁠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비결이 있을까?

올빼미족. '호모 나이트쿠스'(homo nightcus)가 증가하고 있다. 경기불황에 프리랜서나 취업준비생이 늘고 다양한 직업군으로 라이프스타일에 변화가 오면서 밤에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통념을 벗어난 생활방식에 일부에서는 올빼미족이 게으르다고 지적하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인 생활방식일 뿐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올빼미족이 게으르다고?…"누구보다 치열한 밤 보내"

'호모나이트쿠스'는 밤을 뜻하는 '나이트'(night)에 인간을 뜻하는 접미사 '쿠스'(cus)를 붙인 말로, 심야형·밤샘형 인간을 뜻한다. 23일 한국 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야간에 활동하는 올빼미족이 증가하며 2016년 전국 도로의 야간 교통량은 3665대로 2010년 3351대에 비해 약 10% 증가했다. 야간 시간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를 의미한다.

올빼미족이 늘면서 24시간 편의시설도 증가했다. 편의점, 찜질방 뿐 아니라 네일숍, 태닝숍, 헬스클럽, 악기연습실까지 밤낮없이 문여는 곳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시내에서 24시간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밤에도 문을 열어달라는 고객들이 많아 24시간 체제로 전환했다"며 "늦게까지 야근을 마치고 피로를 풀기위해 새벽 1~2씨쯤 운동하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고 말했다.

야간 편의시설은 확대되고 있지만 올빼미족들은 여전히 '사회 시계'가 이들에게 불친절하다고 토로한다.

출근·등교는 오전 8시, 회의·수업은 오전 9시가 채 되기 전 시작된다. 교사와 부모는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고, 자기계발 서적은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강조한다. 아침형 인간을 부지런하고 성공하는 인간형으로 설정한 사회에서 올빼미족은 한심한 족속으로 오해받기 일쑤다.

밤에 작업하는 것이 편하다는 프리랜서 중국어 번역가 B씨는 "남들이 잘 때 한심하게 TV를 보고 인터넷 서핑이나 하며 '킬링타임'할 거란 편견이 있지만 나는 누구보다 치열한 밤을 보낸다"며 "올빼미족만큼 효율적인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밤에 일하는 게 좋아 연구원이란 직업을 선택했다는 C씨도 "밤에 연구할 때 집중이 가장 잘되는데 회의시간은 언제나 내가 가장 몽롱한 오전 8시"라며 "올빼미족을 아침형 스케줄에 끼워맞추는 건 스스로도, 사회적으로도 낭비"라고 강조했다.

◇"올빼미족, 종달새족보다 더 똑똑"…"다양한 생체리듬 존중, 유연근무 활성화돼야"

올빼미족은 아침형 인간이길 포기하는 게 아니라 유전적으로 생체 리듬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아침형 인간보다 더욱 똑똑하고 창의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런던정경대 사토시 가나자와 교수 연구팀이 1994~2002년 8년간 대학생 1만 2000여명을 상대로 수면 패턴과 IQ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올빼미족 학생들의 IQ와 성적 모두 높게 나타났다.

이탈리아 밀라노 세이크리드하트 가톨릭대 마리나 지암피에르토 교수는 2007년 ‘성격과 개인차에 대한 연구’에서 “올빼미족은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든다는 일반적 규칙을 깬 사람”이라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이런 성향은 기존 방식이 아닌 독특한 해결책을 찾아내게 한다”고 말했다.

올빼미족들은 사람마다 다양한 생체 리듬을 이해해주는 사회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일률적 사회 스케줄을 강요했지만 사람마다 생체 리듬이 다르고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연 근무제'(flex time)를 실시하고 있다"며 "올빼미족이든 종달새족이든 개인 활력이 최고가 되는 시간을 파악하고 유연하게 근무 시간을 운영하는 게 기업과 사회에 더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팀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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