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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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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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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속닥속닥-46] #1.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가족은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깜짝 스타가 됐습니다.

당시 근엄한 표정으로 BBC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관련 문답을 이어가던 켈리 교수의 방에 자녀들이 들이닥쳤고, 이 사실을 인지한 켈리 교수의 한국인 아내가 황급히 아이들을 끌고 나갑니다.

명백한 방송사고였지만 아이들의 귀여운 행동은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고, 해당 동영상은 BBC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에서 수천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부 언론과 네티즌이 켈리 교수의 아내를 '보모'로 인식하면서 갑작스레 인종차별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백인 남성 집에 있는 동양 여자는 으레 보모일 것으로 여기는 편견 탓입니다. 켈리 교수의 부인 김정아씨는 "나를 보모로 보는 시선에는 이미 익숙해졌다"면서도 "이번 일이 그런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2.얼마 전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가 FA컵 8강 경기에서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손흥민 선수는 이날 승리의 기쁨만 만끽한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 구호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상대팀 팬들 중 일부는 그를 향해 "DVD 3개를 5파운드에 판다" "라브라도(개의 품종)를 잡아먹는다"는 등의 종 차별적인 구호를 외쳤습니다.

손흥민은 해트트릭으로 인종차별 구호를 잠재웠지만 이 일로 영국 축구계는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마틴 글랜 FA 회장은 "포용의 가치를 추구하는 잉글랜드 축구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고, 경찰도 인종 차별 응원을 한 관중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습니다.

손흥민 뿐만이 아닙니다. 기성용은 셀틱에서 뛰던 2010년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원숭이 소리를 들었고, 박지성도 퀸즈파크 레인저스 시절 '칭크(Chink)'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칭크는 '찢어진 눈'이라는 뜻으로 서양인이 동양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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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의 한 인기 걸그룹도 이달 초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이들은 공연 도중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영상을 선보였는데, 이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스페인계 혼혈로 다소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브루노 마스를 흉내내기 위한 분장이었지만 해외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사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거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린 한국 팬들도 많았습니다. '블랙 페이스(Black Face)'의 의미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흑인이 아닌 출연자가 흑인을 연기하기 위해 받는 무대 메이크업을 뜻하는 블랙 페이스는 1981년까지 흑인을 희화화하기 위한 쇼에 자주 사용됐는데, 흑인과 일부 백인들의 오랜 투쟁 끝에 사라졌습니다.

#4.아들이 아주 어릴 때 일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봉사 단체에 방문했다가 잠시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한 외국인이 다가왔습니다. 무료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습니다. 그때 아이는 미끄럼틀 뒤에서 눈을 가리고 있다가 '까꿍'하면서 눈을 뜨고 나타나는 단순한 놀이를 반복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이와 놀고 싶어하는 그에게 저는 잠시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드디어 아이가 가렸던 눈을 뜨는 순간. 엄마가 웃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아이는 낯선 이의 얼굴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단지 그가 낯설어서 였는지, 피부색이 우리와 달라서 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갑작스레 터진 아이의 울음에 멋적어진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도, 숱한 편견 어린 시선을 견뎌왔을지 모를 그에 대한 미안함이 한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편견과 그들의 편견이 뒤섞인 세상입니다. 우리도, 그들도 의식하지 못한 새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우리는 눈 양 옆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는 '째진 눈(Chinky Eyes)' 제스처와 같은 동양인 차별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타 인종을 향한 차별에는 둔감한 편입니다.

국내에 사는 외국인이 200만명을 넘어섰고, SNS 등을 통해 세계인과 소통하며 살지만 '한민족' '단일민족'의 틀에 갇혀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성인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에 따르면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자가 4명 중 1명(25.7%)꼴로, 미국(5.6%) 등 나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고 합니다.

세상의 편견을 바꾸기 위해 우리 안의 편견부터 깨뜨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외국인의 등장에 울음을 떠뜨렸던 아들은 훌쩍 자라 바로 그곳(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봉사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은아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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