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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건강한 닭까지‘학살’ 안 돼 vs AI 차단 위해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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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으로 간 예방적 살처분 논란

“병 없는데 획일적 명령 수용 못해”

동물복지인증 받은 농장 측 소송

익산시 “인근 6곳 농장 확진 판정

확산 위험 높은 지역, 예외없다”

“저는 ‘제 새끼’(산란계)들을 살리려고 소송을 시작했어요. 예방적 살처분이란 미명 아래 저지르는 무차별적인 ‘대량 학살’과 뭐가 다릅니까.”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방국의 예방적 살처분을 놓고 첫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농장주가 반기를 들면서다.

소송을 낸 산란계 농장주 임희춘(49)씨는 26일 “AI는 공장식 밀집 사육 방식이 불러 온 재앙”이라며 당국을 성토했다. 예방적 살처분은 AI가 발생할 경우 반경 500m 이내는 의무적으로, 반경 3㎞ 이내는 방역당국의 판단 아래 살처분하는 조치다.

중앙일보

‘참사랑 동물복지농장’에서 주인 유소윤(54·여)씨가 닭들을 살피고 있다. [사진 전북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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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이현우)는 지난 23일 전북 익산시 망성면에 있는 ‘참사랑 동물복지농장’의 주인 임희춘씨 등이 익산시장을 상대로 낸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 대한 첫 심문을 진행했다.

임씨 부부는 2015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 기준(㎡당 9마리)보다 넓은 닭장(㎡당 5마리)에서 산란용 토종닭 5000여 마리를 풀어 키우고 있다. 친환경 사료와 영양제 등을 먹이고 동물복지인증과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까지 받았다. 임씨 부부는 지난 5일 날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2.1㎞ 떨어진 육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임씨 농장까지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AI 확진 농장에서 반경 3㎞ 안에 있는 16개 농장의 닭 85만 마리는 모두 살처분됐다. 하지만 임씨 부부는 “건강한 닭들을 죽일 수 없다”며 버텼다. 그리고 지난 10일 전주지법에 살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살처분의 위법성을 따지는 본안 소송을 냈다.

이날 첫 심문에서 농장주 측은 동물복지 농장은 일반 농장과 달리 사람과 동물 사이에 유대관계가 존재하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또 예방적 살처분이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김용빈 변호사는 “임씨 농장은 H5N8형 AI 바이러스의 최대 잠복기(21일간)가 거의 지났지만 발병 징후가 없다”며 “익산시가 발병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살처분을 밀어붙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경제성 면에서도 병아리를 새로 들여와 상품성 있는 달걀을 낳기까지 9개월이 걸린다”며 “살처분 보상금은 임씨 농장에서 저장해 놓은 달걀의 반값만 책정해 5000여만원 정도인데 살처분을 하면 4억원의 소득이 날아간다”고 덧붙였다.

익산시 측은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며 살처분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살처분 지침을 지키지 않은 농장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익산시 측은 “해당 농가 반경 3㎞ 안에서만 6개 농가가 AI 확진 판정을 받았고, 농림축산식품부의 정밀 검사를 거쳐 살처분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절차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정부가 전국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AI 긴급행동지침(SOP)을 익산시만 독자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AI 추가 발병 위험이 크고 인근 충청권에도 가금류 농가가 밀집한 만큼 해당 농가는 살처분 명령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익산시는 이미 임씨 부부를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살처분 명령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16개 단체로 구성된 ‘농장동물 살처분 방지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3일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예방적 살처분은 사육장의 관리 상태나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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