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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숨은 역사 2cm] '계란 위 뱀장어' 네덜란드 극우정당 돌풍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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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히딩크 나라' 네덜란드를 강타한 극우·포퓰리즘 돌풍이 힘을 잃었다.

2017년 3월 총선에서 중도 자유민주당이 극우 자유당을 꺾고 제1당이 됐기 때문이다.

자유당 공약은 중동 난민 차단, 이슬람 사원 폐쇄 및 경전 금지, 유럽연합(EU) 탈퇴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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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 구호를 누른 것은 미국과 다른 선거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당제·결선투표제·연립정부제에 막혀 극우세력이 고립됐다는 것이다

민심의 바닥에는 건강한 시민의식이 있었다. 양극단을 견제하는 관용과 배려 전통이다.

시민의식을 잉태시킨 위인은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1536)다.

독일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과 가톨릭 개혁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가 기독교 인문주의자로 활동하던 16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심각하게 타락했다.

교황과 추기경이 성직을 매매하고 향락에 빠졌다. 성직자들은 죄를 용서해주는 '면벌부' 판매에 혈안이 됐다.

에라스무스는 당시 교회의 추악한 권력과 부패 관행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의 사상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종교개혁에 큰 힘을 보탰다.

다만, 모든 악을 한칼에 베어버릴 수 없다는 믿음은 확고했다.

적폐를 일거에 청산하려면 유혈사태가 불가피하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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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급진 개혁을 주장한 루터와 충돌을 빚은 이유다.

루터는 1517년 독일 비텐베르크성 성당 문에 대자보를 붙였다.

성직자 비리와 일탈을 합리화하는 가톨릭 교리 등을 95개 조로 나눠 반박하는 글이다.

이로써 종교개혁에 불이 붙었다.

화염은 독일을 넘어 유럽으로 퍼져 인류 역사를 바꾼다.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갈등은 1524~1525년 자유의지 논쟁을 계기로 절정을 이룬다.

에라스무스는 하나님 은혜와 별도로 인간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자유의지로 영원한 구원을 얻거나 놓친다는 논리를 폈다.

하나님 전능만 믿으면 인간 자유가 설 자리를 잃는다고 확신했다.

오직 믿음과 교리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루터의 예정론과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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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루터는 노예 상태인 인간 의지가 구원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구원 여부는 100% 하나님 선택이며 인간 이성이나 능력은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로마 가톨릭은 개선이 아니라 모조리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인신공격으로 비화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를 "민족주의 독이 든 열매를 맺은 나무다"라고 맹비난했다.

예술과 학문을 파괴하고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회적 재앙이라고도 했다.

루터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가장 사악한 존재, 신자인 척하는 불신자, 교만한 회의주의자"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중용과 타협의 길을 걷는 에라스무스는 "달걀 위를 뱀장어처럼 걸으며 어느 것도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인물이다"라는 비난도 했다.

지루한 종교개혁 논쟁은 루터의 완승으로 끝난다.

에라스무스는 성당도 종교개혁도 광신에 빠졌다며 중립노선을 견지해 협공을 받은 탓이다.

개혁 논쟁에서 졌지만, 예언은 옳았음이 머잖아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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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반박문을 계기로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 유럽은 남과 북으로 찢어졌다.

종교개혁에 정치권력과 상공인들이 가세하면서 전운이 감돌았다.

에라스무스는 전쟁은 절대 안 된다며 화해시키려 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그는 1536년 죽는 날까지 평화를 호소하는 글을 썼다.

이후 유럽은 교황파와 루터파로 쪼개져 약 100년간 피로 물들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벌인 전쟁으로 무수한 사람이 죽고 유럽은 황폐해졌다.

유럽은 죽고 죽이는 참극을 겪고서야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훌륭한 종교적 이상이라도 남에게 강요해서는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에라스무스 철학은 자연스레 유럽 최고 가치가 됐다.

네덜란드에서는 번영의 원동력이 됐다.

네덜란드는 1579년 종교적 관용과 다원주의를 명문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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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개신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를 인정한 것이다.

이후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하는 유럽인이 줄을 이었다.

스페인 등에서 쫓겨난 유대인 금융업자와 기술자는 황금시대를 이끈다.

해상무역은 17세기 중반 세계 무역량의 75%를 차지한다.

1602년에는 세계 첫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탄생한다.

7년 뒤에는 증권거래와 은행업무가 시작됐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우수한 사상가와 문화·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1648년에는 스페인에서 완전히 독립하는 쾌거를 이룬다.

평화와 관용을 외친 에라스무스 가르침은 교육현장에서도 꽃을 피웠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 1987년 유럽연합(EU)에서 시작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가 간 대학생 교환 교육으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EU 11개국에서 시작됐으나 지금은 유럽을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퍼졌다.

에라스무스가 뿌린 관용의 씨앗이 약 500년이 지나서야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이슬람 종교를 차별하는 네덜란드 극우세력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건 당연한 귀결이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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