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獨 유학시절 처음 만나 편지 주고받으며 인생-문학 논해
최교수, 편지 모아 日서 책 출간
1991년 한국을 방문해 최정호 교수의 자택을 찾은 작가 사노 요코(가운데)와 그의 두 번째 남편인 시인 다니카와 뼸타로(왼쪽). 작은 사진은 사노 요코가 1967년 그린 최정호 교수의 캐리커처. 사노는 그해에 최 교수를 처음 만나 40여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했다. 쿠온출판사 제공 |
“당신은 내게 무한한 기쁨과 슬픔을 줍니다. 당신을 알게 된 걸 신에게 감사합니다.”(사노 요코)
일본의 그림책 작가 겸 수필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사노 요코(佐野洋子·2010년 사망)의 에세이에는 한국인 ‘미스터 최’와의 인연이 여러 차례 나온다. 오랜 기간 한국 팬들이 궁금해했던 ‘미스터 최’의 정체가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노는 일본에서 약 170권의 책을 남기고 문화훈장인 자수포장(紫綬褒章)을 받은 작가로,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 20권 이상 번역됐다.
최 교수는 최근 사노와 주고받은 57통의 편지를 모아 ‘친애하는 미스터 최-이웃나라 친구에게 보낸 편지’(쿠온 출판사)라는 책을 일본에서 냈다. 여기에는 40여 년간 이어진 한일 두 지성의 교류가 생생하게 나와 있다.
두 사람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7년 독일 베를린 유학 시절 만났다. 최 교수가 파티에서 기모노를 입은 사노에게 “옷이 예쁘다”고 했더니 “이 따위 기모노는 난생처음. 답답해 죽겠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사노는 박학다식함에 매료돼 최 교수를 집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최 교수가 과거사를 거론하며 일본을 신랄하게 비판하자 식민지 조선인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이후 둘은 인생 문학 가족 등에 대해 솔직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노는 때로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신전 앞에서 대낮에 방뇨하고 싶다”는 등 특유의 거침없는 표현으로 최 교수를 당황하게 했다. 둘은 귀국 후에도 인연을 이어 나갔다. 최 교수는 사노 특유의 독설과 유머를 높게 평가했고 “편지를 더 보내 달라”고 재촉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자신의 일본 망명을 사노와 상의하기도 했다.
첫 만남 때부터 둘은 기혼이었다. 그리고 최 교수에 대한 사노의 감정은 존경과 애정을 오갔다. 사노는 1980년대 편지에서 어린 시절 사망한 오빠에 대한 미련을 벗으려고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한 심경을 털어놓으며 “죽은 오빠 다음으로 나는 멀고 아득한 미스터 최를 사랑했다”고 고백했다. 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평생 못 만나도 좋으니 “그저 살아만 있어 달라”고 썼다. 때론 “같이 포르노 소설을 쓰자”는 짓궂은 제안도 했다.
사노는 얼마 후 일본의 국민시인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와 두 번째로 결혼하고 “정말 행복하다”고 편지에 썼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도 이혼으로 끝났고 최 교수가 위로하면서 둘 사이의 감정은 우정으로 정착했다. 1990년대 사노는 최 교수 부인의 일본 전시회를 추진했고, “당신 같은 친구를 둔 것은 내 생애 큰 기쁨”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후기에서 사노에 대해 “세상을 화가의 눈으로 보고 화가의 자세로 사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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