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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심정미의 내 인생의 책] ③길모퉁이의 중국식당 | 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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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위로가 되는 글

경향신문

이 책을 뽑은 이유는 내가 아는 한,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이별에의 헌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옮겨본다.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단단하고 건조한 듯해도 수줍고 진진한 마음이 숨어 있는 허수경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좋든 싫든 수많은 관계 속에서 감정 품을 팔고 사는 우리에게 이 글은 짧고도 강력한 위로가 된다. 단지 사람과의 이별만이 아닌 몸담았던 조직이나 공동체, 또는 어떤 이념도 그 대상일 수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결별과 단절에 나는 늘 이 글을 대입해보곤 한다. 근래 나라 안의 날선 대립을 보며 새삼 “왜 너는 나에게 차가웠는가. 그럼 너는 왜 나에게 뜨거웠는가”란 구절이 생각났다.

차갑고 뜨겁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처럼 비록 어긋났지만 그간의 시간과 노력에 기꺼워하고, 수용하고 용서하고 포용하는 자세는 글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사랑할 일도 없으니 이별할 일도 없는 생의 어중간이지만, 잘 이별해야 잘 만날 수 있다는 진리는 언제고 유효하다는 것을 안다. 이 글의 제목은 “고마웠다. 내 생애의 어떤 시간”이다. ‘내’를 ‘우리’로 바꿔 불러본다. 조용히.

<심정미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외홍보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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