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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기고]인권위원은 ‘인권침해 세탁’의 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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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부패할수록 헌법이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쓰여 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국가 권력은 인권을 보장하기보다는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만들어진 기구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인권보장제도를 증진하기 위해서다.

경향신문

2001년 만들어진 인권위는 근래 들어 인권 관련 경험이나 감수성이 없는 사람들이 인권위원이 되면서 정부의 인권침해를 꾸짖기보다는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인권위원 인선절차나 인선기구가 명시되지 않고 지명권자(대통령, 국회, 대법원장)만 나와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 이런 현상을 낳는 데 일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씨는 검사 시절 향응제공 비리가 있었지만 인권위원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인권위원 시절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보낼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 내용을 축소하는 등 정부 옹호자를 자처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최근 이선애 인권위원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것은 절차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나 문제가 많다. 양 대법원장은 이선애씨를 인권위 비상임위원으로 연임시킨 지 불과 53일 만에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연임의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유영하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인권위원 경력이 있다고 해서 그가 우리 사회 인권의식 향상과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증진에 기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선애씨는 인권위원을 하면서 정부의 인권침해를 방관했다. 비정규직 확대를 담은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 표명도 반대했고, 경찰 등의 마구잡이 통신조회에 제동을 거는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 개선에 대해서도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헌법재판관이 지녀야 할 소양인 국민의 기본적 권리 수호보다는 국가권력의 편에 섰다. 심지어 그는 인권위법상 겸직이 금지됐음에도 아직까지 인권위원 사의 표명을 하지 않았다. 양 대법원장의 인선기준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대법원장의 지명권 행사는 인권기구에 대한 인식이 없을 뿐 아니라 ‘인권세탁’을 위한 지명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2014년에도 윤남근 인권위원을 대법관 후보로 추천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는데 또 반복하고 있다. 이제 공석이 될 인권위원도 날림으로 지명할 것인가. 대법원장의 지명권은 국회선출권과 달리 공개적인 토론의 장도 없다. 국회는 당 홈페이지에 요식적인 인권위원 추천 공고라도 하지만 대법원과 청와대는 이조차 하지 않았다. 대법원장은 선출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한 직책이므로 삼권분립에 해당하지 않아 지명권을 줘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나오는 마당에 부적절한 지명권 행사로 국내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인선위원회를 통한 인권위원 선출이 중요하다. 그래서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도 투명하고 공개적인 인권위원 후보추천기구를 통한 인권위원 선출을 한국에 권고했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라도 인선기구와 인선절차를 담은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명숙 |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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