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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카프카가 베를린 소녀의 인형을 결혼시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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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

연합뉴스

프란츠 카프카(오른쪽)와 와인바 종업원 한지 율리 소콜 [저녁의책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베를린에 살던 어느 날 공원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소녀가 인형을 잃어버린 사실을 안 카프카는 인형이 편지를 남기고 여행을 떠났다며 이야기를 지어낸다. 카프카는 그날부터 집에서 인형 대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소녀를 달래려는 카프카의 '대필'은 3주 동안 이어졌다. 인형은 소녀를 정말 좋아하지만 늘 같은 집에 사는 데 싫증이 난 것으로 했다. 하지만 인형이 돌아올 수는 없었으므로 이야기의 끝을 맺어야 했다. 카프카는 마침내 인형을 결혼시키기로 결심하고 약혼 파티와 결혼식 준비, 신혼집을 상세히 묘사했다.

카프카에 관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이 이야기는 카프카와 동거한 폴란드 여성 도라 디아만트의 1948년 회고록에 나온다. 둘은 1923년 9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베를린에 살았다. 인형의 주인인 소녀와 카프카의 편지는 아직까지 찾지 못해 이야기는 전설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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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유언장 [저녁의책 제공]



소설 속 캐릭터가 만든 카프카는 "세상 물정 모르고, 신경증이 있으며, 내향적이고, 병든, 섬뜩하면서도 동시에 섬뜩한 것을 만들어내는 남자, 일종의 외계인"의 이미지다. 카프카 전기 3부작을 쓴 카프카 연구의 권위자 라이너 슈타흐는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저녁의책)에서 그를 둘러싼 고정관념과 오해를 상당 부분 벗겨낸다. 체코·독일·이스라엘의 도서관과 문서보관소 등지에서 발굴한 99가지 자료가 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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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아비투어 성적표 [저녁의책 제공]



소녀와의 일화처럼 카프카의 신화화에 기여하는 자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의 평범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카프카는 1901년 프라하의 알트슈테터 김나지움에서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격인 아비투어를 치렀는데 독일어 과목에서조차 '미'를 넘기지 못하는 성적을 받았다. 그리스어 시험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교사의 수첩을 슬쩍해 문제를 미리 알아내는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약혼과 파혼을 반복한 카프카가 프라하의 사창가를 들락거린 흔적이 그의 일기와 편지에 여러 군데 남아있다. 카프카가 1916년 소설 '유형지에서'를 낭독하자 청중들이 졸도하거나 도망쳤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사실은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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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집필 당시 살던 집의 도면 [저녁의책 제공]



저자는 카프카가 '변신'을 집필할 때 살던 몰다우 강변 집의 도면도 구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방을 주인공 그레고르의 방으로, 부모의 방은 그레고르의 여동생 그레테의 방으로 설정했다. 독자는 딱정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시선으로 집안을 둘러보게 된다.

책의 의도가 여기에 있다. "어둠이 깔린 프라하의 골목에서 가스등의 역광을 받고 있는" 고정관념 속 카프카가 아닌, 그가 남긴 하찮은 파편들에서 다시 발견하는 카프카야말로 정말 섬뜩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항균 옮김. 424쪽. 1만8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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