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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전역예정자 65% "진로 큰 고민…치킨집이라도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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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전역장병 취업박람회 ◆

매일경제

"그만두면 치킨집이나 해야죠. 나이 마흔다섯 군인을 어디서 받아줄까요?"

곧 제대를 앞둔 김 모 소령(44)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군 생활에만 전념했지만 정년이 53세인 중령 진급을 하지 못했다. 소령 정년은 45세. 한창 커가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가 있어 돈 들어갈 곳은 많지만 내년에는 군복을 벗어야 한다. 아내 역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남편과 함께하느라 직장을 잡지 못했다. 그런 김 소령은 치킨집 창업을 구상하고 있다.

"다른 기술을 배우진 못했어요. 군인이라고 사회에서 인정을 해주나요? 아이들 공부라도 시키려면 치킨이라도 튀겨야죠." 사실 김 소령의 사정은 다른 제대 군인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군 생활 20년을 채운 김 소령은 군인 연금을 받기에 당장 생활의 어려움은 없다.

제대 군인이 다시 취업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현상은 심각하다. 다른 직종에 비해 짧은 정년으로 퇴직이 빠르지만 군인 경력이 재취업에 도움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김 소령처럼 많은 군인이 생애 최대 지출 시기인 40·50대에 옷을 벗고 군을 떠난다. 이들의 재취업률은 정규직 기준 32%, 비정규직을 포함해도 58%에 불과하다. 극심한 취업난에 높은 비율처럼 보이지만 일반 30~50대 남성 취업률이 90%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한창 낮은 수치다.

"군인 연금을 수령하는데 재취업이 무슨 걱정이냐?"는 주장도 제대 군인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다. 지난 6년간 5년 이상 복무 후 제대한 군인 57.5%가 연금 미수령자다. 10년 이상 복무한 장기 복무자 3명 중 1명도 2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을 받지 못한다. 이런 제대 군인의 낮은 취업률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95%), 일본(97%), 이스라엘(94%), 영국(94%)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전역 군인의 전직 성공률이 90%에 달한다. 군인에 대한 사회의 우호적 시선에 민관의 노력이 더해져 선진국의 전역 군인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역시 국정 과제로 '제대 군인 일자리 5만개 확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 군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적고 관련 법령과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많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제대 군인이 군 생활 중 쌓아둔 전문성을 활용할 새로운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간부뿐 아니라 복무 중인 병사들도 취업 문제가 군 생활에서의 문제보다 더 큰 고민이었다. 청년 장병들은 군 복무보다 군 복무 이후 삶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진로와 취업 문제가 그들의 고민 대부분(65.1%)을 차지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청년위)와 국방부가 군 장병 2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청년 장병의 가장 큰 고민은 '진로(취업·창업) 관련 문제'(65.%)로 '군 복무 고민'(14.6%)보다 그 수치가 월등히 높았다. 특히 응답자 중 절반(48.8%) 가까이가 군 생활로 인한 경력 단절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제대 후 사회 적응이 부담된다고 밝힌 인원도 50.4%다. 또 계급이 높아질수록, 고학력자일수록 진로를 고민하는 비율이 상승했다. 군 복무 중에도 취업과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9.4%에 달했다. 군 장병 10명 중 7명이 극심한 취업난에 자기계발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군 장병 2명 중 1명은 제대 후 삶에 대한 부담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올해 초 제대하고 복학한 대학생 박건우 씨(23)는 "군 생활 중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제각각 자신의 미래와 진로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며 "많은 군 동료가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2년을 보낸다"고 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답을 얻는 건 아니다.

현재 국군은 장병들을 위한 다양한 진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앞선 청년위 조사에 따르면 실제 복무자 중 진로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비율은 8.1%에 불과하다.

이에 국방부는 제대 후 취업을 앞둔 청년을 위한 '맞춤형 사회 진출 진로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전국 연대·여단 단위 부대를 직접 찾아 전역 후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장병들에게 개별 상담을 제공하고 취업박람회와 채용설명회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부터 군 복무로 학업과 경력이 단절된 장병들을 찾아가 원활한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찾아가는 병영 멘토링' 프로그램도 예년 대비 두 배로 대폭 확대해 시행할 방침이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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