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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연합시론] 삼성 기부 절차 강화, 정경유착 근절 계기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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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삼성전자가 10억 원 이상 기부금에 대해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500억 원 이상 기부금만 사내이사 4명으로 구성된 경영위원회 의결을 거치게 돼 있던 규정을 고친 것이다. 또 기부금 집행 시 사외이사도 참석하는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등 후속 절차도 대폭 강화했다. 아울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국회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도 이르면 3월 중 해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질적 적폐인 정경유착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대놓고 돈을 뜯어가고 뒤를 봐주는 과거 개발시대 식의 직접적 정경 거래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교묘하게 공익으로 포장된 정경유착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53개 대기업의 미르재단 기금 486억 원, K스포츠재단 기금 288억 원 출연도 그런 사례다. 권력의 강압적인 요구가 발단이 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기업도 책임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출연에 따른 반대급부의 유혹이 전혀 없었다고 단언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 입장에선 권력의 요구를 냉정하게 내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규제권 등을 갖고 있는 권력에 저항하다가 당장 어떤 해악을 당할지 모른다.

비자발적 기부금을 포함한 이른바 '준조세'는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준조세 부담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을 만큼 그 폐단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발간된 '기업 준조세의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거둬들인 준조세는 16조4천71억 원으로, 2012년 13조1천348억 원보다 24.9% 늘어났다. 법인세 대비 36.4%, 국내총생산(GDP) 대비 1.1%나 된다. 부담도 부담이지만 권력의 요구에 응하다 총수 구속 상황까지 빚어지면 기업 경쟁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다음 정부에서도 돈을 내라고 하면 낼 것이냐'는 질의에 "국회에서 법으로 막아주세요"라고 했다. 준조세는 우리 사회의독버섯 같은 존재다.

최근 국회에서 '준조세 금지법'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유한국당도 권력자의 준조세 강요를 막기 위해 이른바 '기업 김영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정경유착을 끊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SK그룹이 삼성그룹의 뒤를 밟았고 상당수 다른 기업들도 기부금 운영 원칙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차제에 정치권과 재계는 정경유착을 근절할 수 있는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순실 사태의 여론을 의식한 '소나기 피하기' 식의 일회성 무마책에 그쳐선 안 된다. 실효성 있는 국회 입법과 글로벌 수준에 눈높이를 맞춘 재계 준칙이 어우러져 정경유착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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