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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취재파일] 단교하면 북한이 손해인데…北, 강경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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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김정남 암살사건을 놓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측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용의자들의 배후가 북한 국적 남성들이라는 것을 발표하고 이번 사건에 북한 외교관까지 연루됐다고 밝히자, 북한은 말레이시아가 남한 등 적대세력과 결탁해 북한을 음해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며 “(김정남이) 여성 용의자에게 살해됐는지 경찰이 진짜 사인을 숨기기 위해 용의자를 조작했는지 의문이 많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예의를 기본으로 하는 외교관으로서는 할 수 없는 수준의 말을 한 것이다. 북한은 23일 발표한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도 “우리(북한) 공민이 말레이시아 땅에서 사망한 만큼 그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말레이시아 정부에 있는데, 말레이시아 정부가 도리어 우리(북한)를 걸고 들고 있는 것이야말로 천만부당하며 초보적인 인륜도덕도 모르는 후안무치한 행위”라고 말레이시아를 강력히 비난했다.

말레이시아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국제공항에서 백주 대낮에 살인사건을 일으켜 말레이시아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는데 북한이 적반하장식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말레이시아 총리까지 나서 북한 대사의 언급이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외교적으로 무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 주재 대사를 소환한 데 이어 추가 조치를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내에서는 북한과 단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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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교하면 손해보는 쪽은 북한인데…

지금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단교하면 손해를 보는 쪽은 북한이다. 북한과 말레이시아간 무역액은 말레이시아 전체 무역액의 5만분의 1정도에 불과해 말레이시아에 주는 충격이 거의 없다. 북한과 단교한다고 해서 말레이시아가 국제정치에서 손해볼 것도 거의 없다.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의 이단아가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말레이시아와 단교하게 되면 정치적으로 손해가 크다.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북한에게 동남아의 비동맹국가들은 숨구멍과 같은 역할을 해 왔는데 말레이시아와 단교하게 되면 그 여파가 동남아 전반으로 미칠 수 있다. 이번 사건에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이 동원되면서 해당 국가에서도 북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과 무비자협정까지 체결하며 관계를 잘 유지해온 말레이시아가 단교를 선언한다면 북한이 동남아에서 입는 외교적 타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금이라도 북한이 어느 정도 수위를 조절하며 말레이시아를 달래는 쪽으로 간다면 말레이시아도 단교라는 최후의 카드를 뽑아들지는 않을 것이다. 단교 조치는 한번 단행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최근 행태를 보면 말레이시아 정부와 국민들을 갈수록 자극하는 상황이다. 단교를 하면 북한이 더 손해인데 왜 북한은 강경하게 나오는 것일까?

● 북한 외교관들, 살려면 무조건 강하게 나가야

지금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를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시각을 북한 내부로 옮겨보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김정남 암살 사건은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매우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건일 것이다. 이번 사건 자체가 김정은의 지시 없이는 이뤄지기 힘든 만큼, 그 사후처리 과정도 김정은이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 외무성이나 말레이시아 주재 외교관들이 조금이라도 미적거리는 태도를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

김정은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어떤 처벌을 받게 될 지 모른다.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북한 외교관들은 지금 오로지 김정은의 눈치를 살피며 강하게 나가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말레이시아와의 단교, 동남아에서의 북한 외교 입지,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자칫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다른 그 어떤 것이 중요하겠는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공포정치가 횡행하는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는 국익을 위한 소신이라는게 있을 수 없다.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한 ‘보신주의’가 모든 가치를 앞설 수 밖에 없고, 이러한 보신주의가 누적되면서 국가는 갈수록 병들어 간다. 이렇게 깊어지는 병증을 김정은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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