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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속담말ㅆ·미]산 제사를 잘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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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모르던 어릴 때와 달리 이제는 설날이란 말에 흥겨움보다 부담감이 더 실리는 것은 왜일까요.

누군가 그랬습니다. “명절은 회식 같은 건가 보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데 의무적으로 하니까.” ‘명절증후군’은 이미 일반명사입니다. 여자들은 수고했단 말 한마디 못 듣고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의 무한반복, 남자들은 가다 서다 장거리 운전에 선물과 용돈 액수 스트레스, 젊은이들은 피할 수 없는 ‘명절청문회’. 이쯤 되면 ‘증후군명절’이라 하겠죠. 명절은 집안의 소속감과 결속을 다지며, 우애와 화목을 도모하는 참 좋은 세시풍속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명절은 의무감으로 모여 참뜻은 잊은 채 ‘해냈다’는 허탈한 안도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다 우리 명절이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변했을까요.

‘홍동백서 좌포우혜’가 1980년대에 만들어졌고, 지금의 상차림이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 근거하며, 유교의 상차림 근간도 중국 <주자가례>에 있다는 걸 모르면서 오랜 전통이라며 ‘남들만큼’ 차리려 무진 애를 씁니다. 정작 <주자가례>나 이율곡의 <격몽요결>에는 형편에 맞는 매우 간소한 차림을 이야기하는데 말입니다. 명절 스트레스는 가정불화를 낳고 명절 직후의 이혼 급증도 매년 보도됩니다. 우리는 매년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명절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요.

속담에 ‘죽은 제사 말고 산 제사를 잘 모셔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상을 기리기에 앞서 가까운 이에게 정성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죠. 서로의 노고에 감사하고 마음 깊이 배려하며, 같이 팔 걷어 피로를 걷어주고 다독다독으로 돈독해지는 그런 ‘산 제사’ 말입니다. 이번 명절도 차례상 음식 가짓수 하나 줄이고 웃음 바가지 더 올리려 합니다. 문밖까지 웃음소리 넘치는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위해서.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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