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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Interview] 한국 경제 어디로 가야 하나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 임금 인상·배당금 확대…소비 촉진이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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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위기.’

대학교수, 청와대 경제수석, 한국은행 총재 등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의 기틀을 짰던 박승 전 총재는 현 시국을 이렇게 보고 있었다. 신년 대담 서두부터 우울한 얘기를 주고받아야 해서 안타깝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거쳐 이제 장기 불황 초입에 들어섰다고 본다. 대침체가 올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 기틀을 잘 잡으면 오히려 기회는 있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 원로에게서 위기 대처 방안과 혜안을 들어봤다.

매경이코노미

1936년생/ 전북 김제 출생/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교수/ 대통령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전 한국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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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순실 사태가 불거질 시점에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이후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됐지요. 정국 불안은 계속되겠지만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보시는지요.

A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매우 중요합니다. 헌재 판결이 나와야 하겠지만 대통령 권한 대행이 해야 할 일은 여야 협조를 얻어 다음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안정적으로 사회 체제를 유지하고 선거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는 겁니다. 가장 서둘러 챙길 건 민생입니다. 현재 서민의 어려움이 극심합니다. AI(조류인플루엔자) 대책도 보다 꼼꼼히 따져야 할 때입니다. 당장 밥상 물가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더불어 경제팀이 챙겨야 할 현안은 뭐가 있을까요.

A 지금 경제팀은 뭔가 큰 계획을 세우려 하거나 국정교과서처럼 정치권 논란이 극대화될 사안은 건드리면 안 됩니다. 대통령 탄핵을 했다는 건 국민들이 이번 정권의 정책 방향성에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4대 개혁(공공·금융·노동·교육) 중에서도 장기적인 정책 혹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많은 정책은 유보해서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게 옳습니다.

Q 최근 유력 시중은행이 일제히 성과연봉제 도입을 이사회에서 의결해 논란이 됐는데요.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A 금융 분야에 고질적인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결단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혼란 정국이라고 해도 고연봉에다 시간이 가면 자연히 봉급이 올라가는 금융사 임금 체계는 손볼 때가 왔습니다. 현재 노동시장 흐름과는 달리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니까요.

Q 꼭 국정공백이 아니더라도 새해엔 경기 대침체, 이른바 퍼펙트스톰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워질 거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A 수출과 투자 전망이 아주 안 좋습니다. 박근혜정부 들어 금리 인하, 부동산 부양, 가계부채 증가로 경기가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해에는 반대로 갈 겁니다. 시중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 가계대출 축소 추세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 후유증이 결국 대침체로 나타날 겁니다. 거기다 선거 등 정치 불안이 가중되는 데다 미국, 중국 등의 보호무역 조짐으로 무역에서도 좋은 징조가 없으니 이래저래 악재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Q 미국, 중국 외로 수출처를 다변화한다든지 대안이 있지 않을까요.

A 그건 과거에나 통하는 방식입니다. 예전과 달리 무역 탄력성이 떨어졌습니다. 대기업 밀어주고 달러 강세 기조로 들어선다 해서 수출이 급증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해도 교역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중국 모두 공장을 자국에 짓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를 유지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Q 대안은 뭐가 될 수 있을까요.

A 민간 소비를 촉진하는 게 답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수출 주도 성장정책에서 소비 주도 성장정책으로 바꿔야 합니다. 쉽게 말해 대기업 소득의 환류를 촉진해야 합니다. 당장 건드릴 수 있는 건 임금 인상, 배당금 확대, 법인세 증세입니다. 이를 통해 저소득층 지원이라든가 세출 증가를 통한 소비 촉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Q 경제민주화를 통한 소비 촉진으로 이해됩니다만.

A 부정하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 마땅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의 뜻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생산 측면에서의 민주화와 분배 면에서 민주화인데요. 우선 생산 측면에서 보면 기업이 공정경쟁을 하고 정당한 지분만큼의 지배구조를 행사하고 기업 활동이 합법적이고 투명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돼요. 소수 지분을 가진 재벌이 여전히 힘을 과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분배 측면의 경제민주화입니다. 대기업의 과실을 전 국민에게 환원하라는 겁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후자가 더 중요합니다.

Q 법인세를 건드리면 기업 투자 위축이 가중되지 않을까요.

A 세금을 아무리 내려줘도 투자를 안 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닙니까. 과거에 대기업들은 투자할 곳은 많은데 투자자금이 부족해서 정부에 요청, 세제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기업에 돈이 남아돌지 않습니까. 150조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는데 따라서 투자자금이 부족해서 투자를 못 한다는 건 설득력이 적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너무 낮습니다. 명목세율은 22%라지만 연구개발, 고용 혜택 등으로 실효세율은 14%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국 39%, 일본 30%, 중국 25%, 영국이 20% 정도인데 적어도 영국 수준으로 올려야 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합니다. 돈을 풀어서 소비를 촉진하는 게 지금은 더 필요합니다. 일각에서는 금리정책을 써야 할 때라고 하는데 국제 여건상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는 없을 겁니다. 또 지금 금리를 내려도 소비나 투자에 영향을 끼치긴 힘든 실정입니다.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대신 재정정책을 통해 예산 조기집행 등으로 이를 보완할 수는 있을 겁니다.

Q 일반인이 소비를 못 하는 이유는 실은 가계부채 부담 때문이란 시각이 많습니다.

A 가계부채야말로 시한폭탄입니다.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이내로 동결시켜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방치해왔어요. 가계부채를 줄여야 나라가 산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후 총량 통제를 해야 할 때입니다. 개인빚 문제로 치부하다가 가정 파탄으로 거리에 나앉는 서민들이 늘어나면 오히려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안심대출처럼 불량채권을 채무조정하는 식으로 서민들이 겪는 부채 부담을 선제적으로 덜어주면서 투기성 부동산 대출엔 규제를 통해 시장에 강력한 부채 조정 시그널을 보내야 합니다.

Q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 논의가 있는데요.

A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논의 시점이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통령제냐, 내각책임제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은 운영의 묘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Q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책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이 됐습니다.

A 이 나이에 특별히 정치에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감투를 바라지도 않아요. 하지만 정권 교체는 찬성합니다. 이런 와중에 필요한 건 중도실용노선의 경제정책인데 문 전 대표가 이를 수용하더군요. 저성장, 고령화의 대안으로 아이를 낳는 가정에 장기저리 주택 제공, 대학까지 교육비 무상 제공 등 파격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데 공감한 것도 자문위원장으로 합류하게 된 배경 중 하나입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90호 (2017.01.05~01.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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