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피해 상황 인과관계 있다…제조사 책임 인정”
국가 상대 청구 기각…법원 “증거 추가해 항소심 가라”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재판장 이은희)는 15일 최모씨 등 피해자와 유족 10명이 제조업체인 세퓨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업체 부분에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원고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피해자들에게 1인당 1000만~1억원씩 모두 5억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2008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폐 손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일부는 사망했고 생후 10개월 만에 숨진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재판부에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이 유해하다는 정부 보고서 등을 제출해 인과관계를 인정받았다.
당초 피해자들은 옥시레킷벤키저·한빛화학·용마산업사·롯데쇼핑을 상대로도 소를 제기했지만 지난해 9월 보상금을 받기로 하고 취하했다. 따라서 이 판결은 제조업체의 책임을 처음으로 확인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합의한 경우 피해자에게 보상금은 지급되지만 제조업체가 법률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제조업체의 책임이 인정됨에 따라 다음 단계인 국가의 책임도 인정될 여지가 생겼다. 재판부는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례적으로 항소심 판단을 받으라고 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피고 대한민국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추가 증거를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구체적으로 어떠한 조사가 진행되는지 알지 못해 추가 증거조사 없이 변론이 종결됐다”며 “국가에 대해 책임을 묻는 증거조사가 더 이뤄진다면 항소심에서 추가 판단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7월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감독하는 정부부처 공무원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이 검찰이 확보한 증거를 받아 민사재판에 제출하면 국가의 책임을 묻는 데 한결 유리해진다. 이날 승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 김대원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아서 수사기록 등을 제출할 수 없었다”며 “국가 책임이 인정되도록 항소심에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지난 8월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정부가 흡입독성 실험을 생략하는 등 책임이 드러났다”며 “정부의 책임을 적시한 국정조사 보고서가 채택되면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세퓨에 대한 배상 판결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파산한 상태여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혜리·김기범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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