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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업계 자율로 산업구조조정? 들여다 보니 곳곳서 '논란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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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석유화학 구조조정 갑론을박

"공급과잉 군살 많다" Vs "이미 다이어트중"

업계 자율이냐 강제냐..실효성 있냐 없냐

노조 반발 움직임.."어정쩡한 정부, 구조조정 실패"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최선 기자] “살 빼야 한다는 총론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어떻게 얼마나 빼야 할지는 공감 못한다.”

철강·석유화학 업계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밝힌 철강·석유화학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이같이 꼬집었다. 공급과잉 품목을 줄여야 하지만 정부 대책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밝힌 공급과잉 업종에 대한 다이어트 진단·방식·효과에 문제가 있고 부작용까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엇갈린 진단 “군살 많다” Vs “수차례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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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철강·석유화학의 공급과잉 진단부터 엇갈린다. 얼마나 살을 쪘느냐는 판단조차 다른 셈이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8일 “저유가로 일부 업체가 높은 실적을 거두면서 사업재편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다시 시들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며 “군살을 빼는 게 중요하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업계 측은 “이미 다이어트를 많이 해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다.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이미 올해 생산량을 10~30% 줄이는 등 감산 노력을 해온 상황이다. 한화종합화학, 삼남석유화학, 태광산업(003240) 등은 생산라인 가동 정지와 생산량 감축 등으로 연간 생산량을 총 110만t 줄인 상태다. 롯데케미칼(011170)과 효성(004800)은 TPA를 자체적으로 쓰고 있어 중국발 공급과잉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철강업계도 중국발 공급과잉에 대응해 수년 전부터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정해 왔다. 매각 대상으로 지목된 후판의 경우 포스코(005490), 현대제철(004020), 동국제강(001230) 등이 1200만t의 연간 생산능력을 보유했지만 900만t만 생산하는 등 자체적인 감산을 해왔다. A 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소고기(중국산 철강)가 들어오고 있으니 한우 농가(국내 철강)는 자율적으로 문을 닫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사업재편 방식이 사실상 강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불만도 제기된다. 그동안 산업부가 “업계의 자율적인 사업재편”이라고 했지만 업계 분위기는 달랐다. B 업계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생산설비를 통폐합하라고 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부가 업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컨설팅 업체의 결론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철강은 보스톤컨설팅그룹이, 석유화학은 베인앤컴퍼니가 컨설팅을 맡았다.

◇자율이냐 강제냐..“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사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선진국 선례와도 맞지 않다. 남장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은 기업 스스로 자발적인 사업재편에 나선다. 삼성이 화학 부문을 롯데와 한화에 자율적으로 매각한 선례도 있다”면서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강행할 경우 사업재편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철강 업계는 정부 방침에 따라 후판 설비 등을 줄였다가 경기가 회복됐을 때 중국에 시장을 뺏길 것이라고 전망한다. C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생산설비를 줄이는 것은 오히려 시장 지배력이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부는 “작은 환부라도 이를 방치하면 큰 병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업계에서는 “정부가 병을 키운다”는 얘기가 나오는 셈이다.

물론 경쟁업체들이 서로 눈치만 보다가 사업재편이 지지부진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D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와 업체가 관련 회의를 정말 많이 하면서 공급과잉 줄이려는 방안을 모색해왔다”면서도 “솔직히 돈을 벌어야 하는 업체 입장에선 누가 스스로 장사를 접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재편이 지지부진하더라도 민간기업에 대해 산업부 등 정부가 나서서 ‘페널티’를 줄 만한 강제 수단도 없다.

◇“어정쩡한 정부..구조조정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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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세게 밀어붙이더라도 감원에 대한 노조 측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상원 한국노총 비정규직담당 부위원장은 “기업 경쟁력, 경제를 살리겠다고 인위적으로 감원하면 오히려 내수를 위축시켜 제 살 깎아먹기가 될 것”이라며 “명확한 인사 평가 기준도 없는데 무작위로 감원에 나설 경우 노조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어정쩡한 입장으로 나갈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민간에 맡기지도 않고 주도적으로 끌고 가지도 않는 어정쩡한 상태로 가면 구조조정은 실패하고 시기를 놓치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할 경우를 예상해 플랜 B까지 염두에 놓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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