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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빈 주머니에 구조조정 걱정까지'…산업수도 울산의 우울한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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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車 임협 결렬로 돈줄 막혀…하청업체ㆍ상권 "대목이 없어"

폐업한 현대重 하도급근로자, 막막함 안고 고향길…석유화학은 "지진 트라우마"

연합뉴스

'명절 연휴'…빈자리 많은 현대차 주차장[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추석 연휴가 시작된 14일. 하루 3만4천여 명이 근무하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안팎은 적막에 휩싸였다.

근로자들이 휴가를 떠나고, 공장 울타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상권마저 덩달아 휴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추석은 단순히 한적하다기보다는 쓸쓸하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그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르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추석을 맞게 됐다.

노사는 지루한 교섭 끝에 지난달 24일 임금협상에 잠정 합의했으나, 이 합의안은 사흘 뒤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된 교섭에서도 노사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추석 이후로 어려운 숙제를 미룬 셈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추석 전에 협상을 마무리했다면, 현대차와 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지역 경제 전체가 숨통이 트였을 것이다.

협상이 타결되면 직원 1명당 성과급과 격려금만으로도 평균 1천만원이 넘는 거금을 한꺼번에 받는다.

울산에서 매년 현대차 협상 타결로 풀리는 돈은 지역 경제 전체에 '돈이 도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 현대차 노조 파업으로 함께 공장을 멈춰야 했던 하도급업체들이 대금을 받고 직원에게 임금과 보너스를 지급하는 계기도 된다.

그러나 협상 타결이 무산되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현대차와 협력업체 직원들은 빈 주머니와 개운치 못한 기분을 안고 고향으로 떠났고, 지역 유통가와 상인들은 제대로 대목 장사 한번 못하고 추석을 맞았다.

조선업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현대중공업도 이번 추석이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구조조정과 분사로 덩치를 줄이려 하고, 노조는 생존을 부르짖으며 이에 맞서고 있다.

노사는 5월부터 올해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을 벌이고 있지만, 구조조정 이슈 때문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앞으로 자산 처분, 임금 반납, 연장근로 폐지, 비핵심업무 아웃소싱, 인력 조정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노사 갈등은 지속할 전망이다.

그래도 원청인 대기업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조선과 자동차 산업 특성상 원청업체에 생명줄을 맡긴 수많은 하도급업체는 거대한 불황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휘청거리고 있다.

올해 현대중공업에서 폐업한 하청업체는 36곳이며, 이중 추석을 코앞에 둔 8월에만 11곳이 문을 닫았다.

폐업하면서 근로자 임금이나 퇴직금이 체불되는 일도 다반사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 다녔으나 지난달 회사가 폐업한 김모(44)씨는 "각각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자녀 학비부터 걱정이다"라면서 "추석에 서울에 홀로 계신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가는데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겁다"고 하소연했다.

조선, 자동차와 함께 울산 산업의 또 다른 축인 석유화학은 그나마 불황의 여파가 덜한 모양새다.

연휴 첫날인 14일에도 남구 고사동 SK에너지 울산공장에는 통근버스가 드나들고 있다.

작업복과 안전모를 착용한 직원들이 이곳저곳에서 목격되는 공장 풍경에서는 명절의 여유로움은 찾을 수 없었다.

이 공장 직원 3천여 명 가운데 현장직 1천400여 명은 연중 공장이 멈추지 않도록 4조 3교대로 근무한다. 조별 300여 명씩 하루에 약 1천 명의 근로자가 정상 근무한다.

고려아연 울산공장도 하루에 600여 명의 현장 근무자가 출근하는 등 정유나 석유화학 업체 대다수는 명절 연휴와 상관없이 24시간 가동한다.

공정이 연속해서 이어져야 하는 장치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가동을 멈추거나 재가동할 때 최소한 며칠의 기간이 걸리고 이 과정에서 원료 손실도 크기 때문에 중단없이 공장을 돌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수의 현장직은 정상 출근하고, 사무직만 명절 연휴를 보낸다.

다만 이들 업체 근로자들은 이틀 전 경험한 지진으로 심란하다.

위험물이나 유독물을 주로 취급하는 플랜트 설비는 내진설계가 적용됐다고 알고 있지만, 처음 겪은 진도 5.8 규모의 지진의 강도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실제 14일 지진으로 SK종합화학 폴리머공장의 10개 중 2개 공정 생산라인이 잠시 가동을 멈췄으며, 울산화력 LNG복합화력 4호기도 스스로 발전을 멈췄다가 재가동됐다.

석유화학공단 내 한 기업체에서 일하는 박모(48)씨는 "공장은 진도 7 규모까지 견디도록 내진설계가 돼 있고, 외부에서 누가 물어봐도 그렇게 알려주면서 안심시키고 있다"면서도 "그동안 이 정도 진동이 발생한 적이 없어 지진이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연휴를 앞둔 13일에는 울산의 8월 실업률이 4.0%를 기록, 2000년(4.8%) 이후 16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는 우울한 통계까지 발표됐다.

불황을 모르는 산업수도, 1인당 소득 1위 도시 등의 수식어로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샀던 울산은 어느 때보다 초라한 추석을 맞고 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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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하는 조선업하청업체 노동자[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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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SK에너지 전경[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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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LNG복합화력 4호기 가동 중단된 울산화력[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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