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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구조조정 원칙 무너지면 딜레마… ‘데드라인’ 준수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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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구조조정 ‘야전사령관’ 이동걸 산은 회장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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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기간은 아니었는데, 10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

이동걸(68·사진)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월 취임한 이후 6개월간의 소회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비장함과 고단함이 묻어난다. 이 회장은 우리 경제의 중차대한 현안인 조선·해양 구조조정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그간 주채권은행의 수장으로 STX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5개 기업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 신청 후 회생절차를 밟고 있고 현대상선은 세금 한 푼 안 들이고 경영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처럼 처방은 달라졌지만 구조조정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현대상선 구조조정에서는 혈세를 지켰고, 한진해운 때는 원칙을 지켰다”며 “구조조정은 원칙이 무너지면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에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지키고자 애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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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세운 구조조정 원칙의 요체는 ‘데드라인 준수’이다. 매듭을 지어야 할 때는 반드시 그렇게 했다는 얘기다. 그는 “(구조조정 사태의 추이가) 우리 예상에 근접했을 때 (데드라인을 정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며 “그런 용기는 40년 금융인생에서 쌓은 경험치에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1970년 한일은행에 입사해 금융권에 발을 디딘 이 회장은 2010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겸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은행과 캐피털사, 증권사에서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6년 만에 금융권에 복귀한 그의 비전은 ‘구조조정 전도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회장은 “국책은행인 산은의 미래 비전을 설명하자면 한 축은 구조조정이고, 다른 한 축은 미래 먹거리를 갖추기 위한 ‘글로벌 KDB’와 자본시장의 강자”라며 “국가 신용등급인 ‘트리플 A’를 이용할 수 있는 은행은 국내에 산은 말고 없는데, 우리가 세계에 진출해 자본시장 강자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산은 본점 집무실에서 1시간40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취임 후 구조조정에 매달려 6개월여 흘렀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힘든 시기였다. 부임과 함께 STX조선해양과 현대상선,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문제에 당면하면서 구조조정을 선제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시간을 늦춰 실기하면 그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경제의 선순환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다. 그만큼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한진해운도 이런 원칙에 따라 결정했다. 법정관리로 어려움을 맞게 된 업계, 한진해운 관계자와 가족에게는 죄스러운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명으로 결단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지나온 것보다 훨씬 많다. 먼저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장을 빨리 안정화시켜야 하는데, 많은 고민을 통해 방법과 활로를 찾고 있다. 물론 대우조선이라는 큰 과제는 여전히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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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구조조정에 원칙이 서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국책은행인 만큼 무엇보다 국민 혈세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또 사안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일은 배제하고자 했다. 매듭을 지을 때는 명백히 지으려 했다. 그래서 데드라인만큼은 결코 양보가 결코 불가능했다. 한진해운의 일은 조금 가혹하다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우리 직원과 금융권 동료, 관계기관과 소통해 구조조정이 큰 저항에 부딪혀서는 안 된다는 점에도 유의했다. 대화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한진해운의 일도 조양호 회장과는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한진 쪽에서 한진해운의 알짜 재산을 빼돌리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조 회장을 믿고 있다. 이제 시장에서 ‘한진해운+알파’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산은이 무턱대고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철강 등 관련 산업에서 보이지 않는 자구노력이 많이 이뤄질 것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국적 선사가 현대상선 하나만 남게 돼 해운산업이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우려된다.

“먼저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는 사후 피해부터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전문성 있는 관계기관이 열정적으로 해결에 나선 만큼 긍정적으로 풀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선주협회에서 17조원의 ‘후폭풍’을 예상했는데, 당국의 열정과 역량으로 볼 때 피해 규모가 그렇게까지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물동량에 비해 선박이 ‘오버캐파(공급과잉)’인 상황에서 선박이 줄어 적정량으로 가면서 우리 해운업이 조금 더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선순환도 기대할 수 있다. 앞으로 현대상선이 공백을 메우는 한편 다른 중소형 해운사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난제 중 난제인 조선업계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원칙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대우조선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뭐냐고 물으면 콕 집어 얘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우조선은 앙골라 국영석유회사인 소난골의 드릴십(이동형 시추선) 인수 여부, 이달 초로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 4000억원의 해결 여부, 전액 자본잠식 상태의 해소 여부 등이 복잡한 실타래로 얽혀 있어 가닥을 잡아 풀어가는 과정에 있다. 대우조선 문제는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국고를 왕창 집어넣고 정상화하면 손쉬운 선택이 되겠지만 안 넣고 해야 하는 만큼 어려운 일인 것이다. 우리의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조선업을 살리려면 대우조선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빅3’(대우조선,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가 각각 특화된 분야에서 존립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대우조선의 여신등급 강등으로 자본 확충 필요성은 없는가.

“대우조선 여신등급의 강등으로 충당금을 약 8000억원 쌓은 뒤에도 2분기 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5.15%일 정도로 염려만큼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산은이 건강하게 가려면 자본 확충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앞으로 구조조정 문제로 큰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가서 뒤늦게 해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시중은행은 대우조선 충당금으로 부실 여신의 9.5% 정도 쌓았지만 우리는 10.4%로 1%포인트가량 더 했다. 그렇게 하기까지 150명의 구조조정 부문 직원이 지난 6개월 동안 휴일을 반납하고 일을 했다. 야단만 치지 말고 격려도 해줬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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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융 자회사 매각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

“비금융 자회사 132개는 빨리 팔거나 유동화해 그 대금을 산업자금으로 쓰고, 우리는 몸집을 가볍게 가져 가려 한다. 자회사를 많이 갖고 있다는 자체가 짐이 된다. 가장 큰 교훈이 대우조선 아니겠느냐. 세계 1위를 할 때 팔았으면 우리는 엄청난 이익도 봤고 산업현장에도 자금을 많이 공급했을 것이다. 비금융 계열사는 패키지로 팔 방법을 고안했다. 전문화된 특수목적법인(SPC)에 상당 부분 넘기고, SPC가 시장에서 원매자를 찾는 방식이다. 이런 일을 해본 국내와 외국계 금융기관 각각 하나씩 불러들여 함께 일할 생각이다.”

―글로벌 사업에도 공을 많이 들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산은이 구조조정에 ‘올인’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렇다면 2, 3년 지나서는 먹거리가 없어지고 만다. 산은은 자본시장의 강자로 국내외 시장에서 해야 할 역할도 있다. 1000억원 규모의 문화융성펀드와 600억원짜리 씨앗펀드, 500억원을 조성한 특허펀드를 만든 이유다. ‘글로벌 KDB’를 구현해 낙후된 금융산업의 수준을 국가 경쟁력만큼 올리고자 글로벌 금융 벨트를 구상하고 있다. 먼저 차이나 벨트는 6개의 중국 지점으로 구성되는데, 허브는 홍콩으로 한다. 인도에서 인도네시아까지 8개 점포를 기반으로 한 동남아 벨트도 만들 작정이다. 허브는 싱가포르가 될 것이다. 연내 미얀마와 방콕, 베트남 등에도 진출해 현지 자본시장의 강자를 노리겠다. 글로벌을 향해 나갈 때야 과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만큼 외국의 자본과 같이해 사업영역을 넓혀나갈 것이다.”

대담=주춘렬 경제부장

정리=황계식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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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회장은 ●1948년 대구 출생 ●경북사대부고 ●영남대 경제학과 ●신한은행 부행장 ●신한캐피탈 대표이사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겸 이사회 의장 ●신성해운 회장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특임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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