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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한진해운 법정관리 파장①] 6500억 비협약채권…법정관리 초강수 배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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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원칙+경제논리의 복합적 작용

신규 자금 비협약 채권 상환에 쓰였던 과거 대한전선 구조조정의 교훈

신규 자금 지원 해외 채권자만 배불리는 꼴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의 국적선사가 침몰했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 또한 깨졌다. 한진해운에 대해 채권단이 단호히 지원 거부를 결정하면서다. 채권단은 지난 30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채권단 긴급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한진해운의 자구안(5000억원)에 대해 수용 불가 결정을 내렸다. 한진해운은 이르면 31일 이사회를 거쳐 법정관리를 신청할 예정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진이 제시한 자구안(4000∼5000억원)은 전체 부족자금(1조∼1조3000억원) 대비 지원 규모가 부족하고 자금 투입시기 등을 감안할 때 대주주(한진그룹)의 회사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미약하고 경영정상화를 이루기에도 크게 부족한 수준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이같은 결정을 내리기 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수출입 물량의 대부분을 해상으로 운송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원양 해운산업은 얼라이언스를 통한 환적 물량 유치, 부산항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적잖은 기여를 하는 등 국가 서비스 수지 개선에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채권단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채권단은 그동안 강조해 온 구조조정의 원칙을 버릴 수 없었다.

채권단의 이런 결정은 비단 구조조정의 원칙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다. 경제 논리 상으로도 신규 자금 지원은 결코 실행에 옮길 수없는 선택이었다.

2분기 영업적자와 운임하락 등으로 향후 회사 정상화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설사 한진해운에 신규 자금을 지원한다 해도 결국은 상거래채권 등 비협약채권의 상환에 자금이 소요되며 회사의 정상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크게 작용했던 것. 다시 말해 ‘밑빠진 독에 물붙기’라는 인식이 채권단 내부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과거 대한전선의 구조조정에서 얻은 교훈도 크게 작용했다. 과거 대한전선은 구조조정 진행 과정에서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유상증자 등으로 마려한 자금을 회사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하지 않고, 회사의 부도를 막기 위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등의 상환에 썼다. 그 결과 비협약채권의 규모는 줄일 수 있었지만, 회사 운영자금의 부족 상황은 계속됐고, 결국 대한전선은 은행에 다시 신규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악순환을 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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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진해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진해운의 연체 상거래 채권 규모는 지난 5월 3200억원이었다가 현재 650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다. 게다가 이 중 6000억원이 해외 용선주와 해외 항만하역업체에 몰려 있다.

이에 대해 한진 측이 올해 중 2000억원 만을 지원한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채권단이 신규 자금 지원을 해도 결국 나머지 채권의 상환에 소요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국내 금융기관이 지원한 자금으로 해외 거래처의 연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형태가 되는 꼴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이 신규 자금을 지원한다 해도 회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용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 해외 용선주, 해외 항만하역업체 등 해외 체권단의 상거래 채무를 상환하는 데 사용돼 그대로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크다”며 “과거 법정관리를 보내기 두려워 ‘밑빠진 독에 물붙기’ 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다 실패한 사례가 있어 자금 지원 결정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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