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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오동희의 思見]구조조정, 마르크스와 케인스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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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에 대한 구조조정에 노동조합의 반발이 거세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14일 총파업 결의를 했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지난 15일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선언을 했다.

그리고 무능한 경영진의 퇴진요구와 대주주의 사재출연 등 대책을 요구하며, 천막농성과 총파업·공장점거 등 무력시위에 나서겠다고 한다.

머니투데이

이들은 "적은 월급에도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우리가 구조조정을 당해야 하느냐"며 울분을 터트린다. 이들의 이런 몸부림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정부나 채권단, 해당 기업이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과정과는 다른 더 좋은 해법이 있는 걸까. 아쉽게도 그 누구도 그 해법을 쉽게 찾지 못해 현재의 길을 가는 것이다.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 찾아온 경기침체는 우리 내부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산품에서 공급과잉이 발생해 기업의 수익이 떨어지고, 기업의 영속을 위해서는 비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산을 매각하고, 인건비 등 고정비를 줄여야만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모두가 일자리를 잃는 공멸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경제학파를 거느린 유이한 인물들인 '케인스'와 '마르크스'는 해법은 다르지만, 이 같은 위기의 과정에 대한 진단은 비슷하다.

독일 출신 철학자이자 노동자 계급의 정신적 지주인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약 150년 전에 쓴 '자본론'에서 경제 공황과 대량 실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자본가들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공급과잉이 발생하고, 상품가치(기계 및 원료가격+노동력+잉여가치)보다 낮은 시장가치가 형성되면서 기업의 이윤이 감소해 파산하고, 실업자가 양산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유일한 방법은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들이 이기심을 버리는 공동사회다. 과잉생산을 하지 않도록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이나'협동조합'으로 체제를 전환해 '사회의 소유'와 '공동노동', '자본가 없는 생산'을 통해 이상 사회를 건설할 것을 주창했다. 그의 주장은 비판론자들에 의해서 현실성 없는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배척받고 있다.

이에 비해 영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실업의 문제는 정부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시장 경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케인스의 해법은 1930년 미국 대공황 시기 사회간접 자본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 투자 등을 이끈 뉴딜정책으로 나타났다.

마르크스나 케인즈가 불황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과 해법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궁극에는 일자리 창출과 실업해소라는 지향점에서는 같다.

공급과잉과 실업의 해법을 국가통제에서 찾느냐,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개인의 자율의지에서 찾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쪽이든 자기희생은 필요하다. 파업을 하고, 공장을 점거하면 수주가 늘어나고, 삶이 나아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조선업의 위기 원인에는 중국 등 경쟁국의 과잉생산에 따른 공급과잉의 문제가 있었다. 또 경쟁에 따른 운반선의 가격이 떨어졌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새로 진출한 해양플랜트 사업의 미숙한 대응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부의 모럴 헤저드로 드러났다.

현 상황에서 직원들의 피해나 희생을 최소화하고,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길은 '나는 상관없다는 인식'이 아니라 각자 위치의 무게만큼의 책임감과 자기희생을 하겠다는 자세다.

자기 희생을 가장 크게 해야 할 사람은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 '아래와 아래로'로 이어지는 사슬에서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책임에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두가 한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6일 대한상의 조찬 강연회에서 30년간의 구조조정을 해온 경험으로 볼 때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은 '각 구성원들의 고통 분담' 의지가 강한 기업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온다.

채권단과 주주, 노조 등 그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자기희생이 담보되지 않으면 공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노동자 계급에 의한 자본가 계급의 타도가 아니라, 자본가인 주주·채권단과 노조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자기 희생을 통해 생산의 터전을 살리는 게 함께 오래 살 수 있는 길인 듯하다.

'내가 사라진 후에 남이 갖는 행복이 무슨 의미냐'고 되묻는다면 답할 수 있는 얘기는 별로 없다.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안내하겠지만 그 길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할 수 있는 얘기는 현재 각자의 위치와 무게만큼의 책임의식을 갖고, 한 걸음씩 양보해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공생을 보장해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뿐이다.

오동희 기자 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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