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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부실의 고리> ④'노조 환골탈태' 없이는 구조조정 성공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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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임금에 복지혜택 유지하려다간 노사 공멸할 것"

'임금삭감·복지축소' 등으로 경쟁력 키우고 일자리 나눠야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조선업 구조조정의 성공을 위해서는 경영진은 물론 노동조합도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조5천억원의 자금을 쏟아붓고도 끝내 법정관리에 직면한 STX조선해양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구조조정은 지극히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이라는 각오로 노사가 힘을 합쳐 난관을 돌파하지 않고는 성공을 장담키 어렵다.

하지만 지금껏 조선업계 노조가 보인 모습은 비상사태에 직면한 현실을 타개하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노사 일심동체의 자세와는 거리가 한창 멀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평가이다.

지난해 1조5천억원의 적자를 낸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금 인상, 성과급 지급, '퇴사자 수만큼 자동충원' 등 무리한 임단협 안을 내놓았다. 심지어 매년 우수 노조원 100명 이상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사측이 과장급 이상 희망퇴직을 강행하자 불복종 투쟁에도 나섰다. 희망퇴직자 선정이 정리해고나 마찬가지라면서, 과장급 이상 대상자들은 자리를 지키며 노조에 가입해 불복종으로 맞서라고 독려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정부 주도의 조선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구성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측의 자구 계획에 맞서 총력 투쟁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3년부터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STX조선 노조는 올해 초 사측이 자녀 학자금, 의료비 등 복지 혜택을 중단하자 고용노동부에 회사를 고발하기도 했다. 복지 혜택 축소는 임단협 합의 사항이라는이유에서다.

이러한 조선업 노조의 모습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무리한 해외 수주와 방만한 경영으로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경영진에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동안 고임금과 복지 혜택을 누려온 노조도 경영난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조선업 근로자 평균 연봉은 현대중공업 7천827만원, 대우조선해양 7천500만원, 삼성중공업 7천100만원에 달한다. 채권단 자율협약 상태인 STX조선도 7천800만원에 이른다. 이밖에 무주택자 융자, 학자금 지원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받는다.

중국과의 치열한 가격 경쟁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러한 고임금은 기업 경쟁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조선업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자본집약적 산업이지만, 인건비가 전체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기도 하다. 고임금 체제를 손대지 않고서는 경쟁력 회복이 어렵다는 얘기다.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현재 조선업 등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은 모두 고용유지 능력이 없다는 엄혹한 사실을 노조가 직시해야 할 것"이라며 "노조가 이를 직시하지 않고 기득권에만 집착하면 결국 망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기업 노조가 고용 유지에만 집착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먼저 잘라야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노조는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자구 노력에 나서고 비정규직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도 조선업 노조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하며 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선업 노조가 요구하는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위해서는 노사의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별고용지원업종은 고용 사정이 급격히 악화할 우려가 있는 업종을 지정,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고용안정 대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자동적으로 지원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라며 "고액 연봉을 받는 조선업체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자구 노력을 하지 않는 기업까지 지원할 수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정부가 반드시 그 업종에 속하는 모든 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임금 삭감, 복지혜택 축소 등 노사의 자구 노력을 지켜본 후 지원 대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가 투쟁할 때는 투쟁하더라도, 사측과 협력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고용 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일자리 유지를 위해 임금 삭감 등 과감한 양보를 한 폴크스바겐 노조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993년 경영난에 시달리던 폴크스바겐은 10만여명의 종업원을 7만여명으로 줄이고 독일 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반발하던 노조는 결국 35시간이던 주당 노동시간을 28.8시간으로 줄이고 대신 임금을 10% 삭감하는 것에 동의했다.

이로써 구조조정 대상이던 3만여명의 폴크스바겐 노동자 가운데 2만여명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권 교수는 "경영진도 경영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와의 긴밀한 협력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며 "노사가 이러한 대승적인 양보와 협력을 끌어낸다면 일자리 나누기와 근로시간 단축에 의한 고용 유지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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