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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현장에서] 구조조정 전에 생각하라,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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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스·쌍용차·오리온PDP…

쫓기듯 내놓자 중국이 가져가

국부 유출 막을 원칙과 제도 필요

중앙일보

김유경 경제부문 기자


중국의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생산 회사인 BOE(징둥팡·京東方)는 요즘 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회사다. 저렴한 가격 대비 훌륭한 품질 덕에 시장 점유율 17.3%(1100만대, 1분기 기준)로 어느새 세계 2위에 올랐다. 2~3년 전 4~5위권에 머물렀던 회사가 이젠 삼성디스플레이보다 많은 물량을 공급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1위인 LG디스플레이(1260만 대)와의 격차도 크지 않다.

빠르게 크고 있는 BOE LCD패널 사업의 모태는 사실 한국이다. BOE는 과거 TV진공관과 PC용 일반 모니터를 생산하는 크지 않은 회사였다. 그러나 2002년 하이닉스의 TFT-LCD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인수하며 도약에 성공했다. 당시 하이닉스는 반도체 기술과 맞닿은 LCD패널을 차세대 먹거리로 키웠다. 그러나 과잉 투자로 연간 2000억원의 금융 비용을 감당할 수 없자 통신·LCD 등 비주력 사업을 모두 매각했다.

결과적으로 BOE는 하이디스가 보유한 TFT-LCD의 생산설비와 4331건의 기술을 모두 차지했고, 법인은 2006년 부도 처리했다. 매각 당시 기술 유출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대량 실직을 우려한 정부와 채권단의 금융안정 논리에 막혔다. BOE는 이제 한국 기업의 숨통을 죄는 위치로 성장했다.

쌍용자동차도 비슷하다. 한국의 대표적 레저용차량(RV)·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조사인 쌍용차는 경영난에 빠지자 2004년 상하이차(上海汽車)그룹에 팔렸다. 2011년 인도 마힌드라 그룹에 팔기 전까지 쌍용차의 노하우를 받아들인 상하이차는 창청·창안 자동차와 더불어 중국 RV·SUV 분야의 강자로 거듭났다. 중국의 RV·SUV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현대자동차는 상하이자동차 등의 선전에 막혀 고전중이다.

플라즈마표시패널(PDP) 분야 세계 4위인 중국의 창홍전자도 2007년 한국 기업 오리온PDP를 인수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오리온PDP는 1995년 국내 최초로 PDP 패널을 개발한 회사로, 10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다. 한국 경제의 ‘꿈나무’가 중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중국 기업은 기술 뿐만 아니라 노하우를 지닌 기술진 모시기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중국 기업이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 같은 분야의 기술자를 스카우트할 때는 한국 연봉의 3~9배를 최소 3년간 지급한다는 이른바 ‘3·9·3’의 룰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취업 제한 기간이 풀릴 때까지 집과 차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자녀의 학비까지 내준다. 구조조정 위기에 몰린 국내 기술자로선 유혹을 마다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6조원 대의 자구안을 내놨다. 자구안은 금융·관광 등 비핵심 사업과 일부 설비를 정리하는 한편, 인적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혈세를 들이느니 차라리 모두 해외에 넘겨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현재와 미래의 가교를 놓는 섬세한 작업이다. 무턱대고 기업을 팔았다간 ‘한국 넘기’를 목표로 뛰고 있는 중국 조선사에게 시장을 통째로 넘겨줄 수도 있다. 실제 일부 중국의 조선사가 세계 1위인 한국의 선박 기술을 노리고 있으며, 대우조선의 매각을 기대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글로벌 경제와 산업 환경이 바뀌면 산업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장래를 고민하지 않고 알토란 같은 기업을 경쟁자에게 팔아서는 곤란하다. 이번 조선업 구조조정에선 기업을 지킬 수 있는 ‘핵심인력’(Human resource)과 ‘원천기술’(Original technology), ‘미래와 비전’(Prospective), 그리고 기업에 힘을 불어넣어 줄 ‘국민적 격려’(Encouragement)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도 국부 유출이 없도록 구조조정의 원칙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김유경 경제부문 기자 neo3@joongang.co.kr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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