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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뉴스분석] 산으로 가는 조선·해운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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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까지 나서 ‘감놔라 배놔라’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인 기업 구조조정을 다루는 논의 테이블에 정치권이 합류했다. 구조조정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놓고 재정·통화 당국 실무자들이 줄다리기를 벌이던 판이 갑자기 확 커졌다. 출전하는 ‘선수’들의 체급이 달라졌고, 논의 주제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나 포괄적인 실업 대책으로 번졌다. 정부가 경제 전반에 파급력이 큰 이슈를 대의기관인 국회와 협의해 처리한다는 당위론을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처럼 사공이 늘면서 구조조정 작업이 산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무엇보다 경제논리와 원칙에 충실해야 할 구조조정이 정쟁의 대상으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 특히 선거가 없는 올해가 구조조정의 적기라는 점에서 정치권 가세로 지루한 공방만 이어지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일보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20일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여야 3당 정책위의장이 참여하는 민생경제 현안 점검회의 첫 회의에서 추경 카드가 급부상하자 기재부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기재부 예산실은 최근 추경 편성 요건을 규정한 국가재정법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현 상황은 국가재정법이 규정한 추경 편성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유 부총리가 20일 회의 직후 추경 편성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점검회의에서도 야당은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한은 발권력을 동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기재부와 한은이 참여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는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자본확충펀드와 현물출자를 병행 검토하는 원칙에 합의했지만 세부사항에 대해선 입장차가 여전하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세계일보 기자와 만나 “(발권력 동원은) 국민투표를 거치든지 국회 의결이든 성명서든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게 국민적 합의”라고 잘라 말했다. 한은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발권력 동원 여부가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업계 구조조정도 난제 중 난제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현재 조선업계에서 인력이 100이면 될 게 150 수준”이라며 “또한 3분의 2가량은 고용계약이 아니라 일감으로 관계가 이뤄지는 외주·협력업체여서 고용조정이 (구조조정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자칫 인력감축 등 실업문제가 정치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이 최근 박근혜정부의 ‘3기 경제팀’에 새로 합류한 것도 변수다. 19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구조조정을 역설해온 강 수석이 보다 적극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래저래 구조조정 작업에서 메스를 들이댈 ‘집도의’와 훈수꾼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내년이면 대선 정국이라 힘들고, 올해 말까지 구조조정을 완료해야 하는데 지연되고 있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명지대 조동근 교수도 “기업 구조조정은 절대로 정치 문제로 연결하면 안 된다. 경제논리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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