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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구조조정 1개월] 부실규모-구조조정 구체안 없이 자본확충 논란만…우선순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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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해준ㆍ배문숙 기자] “어떻게 구조조정하겠다는 거죠? 그게 나와야 얼마를 투입할지 나올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조선, 해운 등 취약업종의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에 어느 정도의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부 고위 관계자가 되물은 말이다. 이 반문 속에는 최근의 구조조정 논의가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던 지난달 15일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구조조정을 국정의 중심 화두로 던진 이후 한달이 지났지만 전반적으로 논의가 핵심을 비켜간 채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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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논란의 핵심에 서 있는 유일호 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지난 3일(한국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세안+한중일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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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선 취약업종의 현재 부실규모 및 미래 부실예상 규모를 먼저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설계도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실부문과 우량부문을 분리해 매각할 것인지, 인수ㆍ합병(M&A)을 진행할 것인지, 특정 부문만 떼내어 별도 회사를 설립할 것인지, 인력과 생산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안이 먼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운과 조선의 부실 실태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은 물론 이의 처리 방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부실을 떠안기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논의만 무성한 상태다. 부실 규모조차도 단편적인 현상들만 나오면서 불안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말들은 많이 나오는데 구체적인 사항이 진행되지 못하고 뭔가가 어디선가 막혀있는 느낌”이라며 “구조조정으로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데 거기에서 어느 것은 팔고 어느 것은 계속 협의 중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거나 인력 구조조정안이 나와 노조들과 협상이 진행되면서 반발하고 시끌시끌해야 하는데 지금은 단면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 논의가 부실에 대한 원인 규명과 해당 기업 및 금융회사의 자구노력, 향후 부실발생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 등 근본처방을 미룬 채 금융지원으로 넘어갔던 2008~2009년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외면하고 대주단 협약을 맺어 건설사에 프로제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늘렸다. 하지만 건설사 위기로 PF에 참여했던 저축은행이 어려움을 겪는 등 큰 후유증을 겪었다.

2009년 시중은행들이 위기를 겪을 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넘어갔다. 당시 은행들이 부실채권 증가 등으로 어려움을 겪자 구조조정 대신 자금 지원에 매달렸다. 당시 채권시장안정펀드, 증시안정펀드 등을 만들어 대처하다 그것으로 부족하자 한국은행의 10조원을 포함해 20조원의 유사 공적자금인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가장 큰 문제점은 과거(2008~20009년)의 잘못을 지금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자금을 찔금찔금 조달하면서 관치금융을 하다가 결국은 구조조정도 제대로 못하고 책임도 제대로 묻지 못하는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며 “지금도 근본해결을 미룬 채 이를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자본확충 방안에 논의가 집중될 경우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당국의 지원에 기대면서 자구노력을 미루고 근본적 해결책을 외면하는 등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때문에 구조조정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 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자본확충 규모에 대해서도 “은행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야 필요한 자본확충 규모를 예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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