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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한국판 양적완화 어떻게 볼까? ①] 기업 구조조정 자금, ‘위기 유발자’가 상환 부담 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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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통한 자금 조달로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거나 채권을 매입하고자 한다. 이들 국책은행은 이 자금을 위기에 빠진 조선사와 해운사들의 구조조정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직접 출자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법을 고치지 않으면 채권을 살 수밖에 없다. 물론 주식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채권을 발행하면 되나 그래도 결과적으로 산업은행의 자본은 늘어날 것이다.

“추경 회피는 여소야대 국회 통과시 비판 모면하려는 것”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통상 마지막 보루로서 그 전에 정부는 추경을 통한 재정 투입으로 국책은행의 자본을 늘려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피하고자 한다. 추경을 여소야대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겪게 될 치도곤을 어떻게든 모면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중적인 책임 회피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여소야대 국회의 상황은 국민들이 만들어 준 것인데 이를 피하고자 하는 것은 그냥 넘어가자. 한은의 발권력을 통하여 국책은행의 채권을 사면 이들 채권의 상당한 부분은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 자본으로 전환되어도 다시 자본 부족분만큼 재정이 투입되어야 한다. 결국 한국은행을 윽박질러서 위기를 모면하면 자금은 사용하고 실제로 재정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은 다음 정권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경향신문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제도의 한계 상존… 남용 우려, 제도적 보완 필요

근본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이 구조조정의 부담이 국민경제에서 누구의 부담으로 전가되느냐 하는 것이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는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제도의 한계를 체감한 바 있다. 대형 투자은행들이 운용 자금과 투자 규모에 비하여 극히 낮은 비율의 자본을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이 회사의 지분 소유자들은 고배당을 만끽하였다. 위기에 이르자 이들은 자본만 포기하면 되었고 자본에 비하여 엄청난 규모의 채권자들의 손실은 전 세계가 나누어 가지게 된 것이다. 인류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제도도 한계가 있고 남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시장경제 체제는 항상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하게 되었다.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 방안?… “기업 구조조정 기금 조성·상환 방안 모색해야”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조선사들과 해운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이 회사의 주주들이 출자한 자본은 소각되고 후순위채권도 회수 기회를 잃을 것이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에는 선순위채권도 손해를 보고 공적자금도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끝나서는 안된다. 시장경제에 상존하는 경기 변동을 대비하지 못한, 혹은 공적자금을 믿고 안한, 이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금융위기 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정부는 금융권에 대한 특별한 부과금이나 금융거래세를 통하여 공적자금을 회수하고자 하였다.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제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상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도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 방안을 생각하면서 자금조달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여 자금을 마련하더라도 특별하게 마련된 기업 구조조정 기금에 자금을 투입하고 정부는 이 기금을 운영하면서 기업구조조정을 이끌어야 한다. 단 이 기금은 10년 정도의 제한된 시간 내에 소멸되고 한국은행에서 지원된 자금은 상환되어야 한다. 즉 기업 구조조정에 지원된 자금의 규모만큼 수입이 생겨야 하는 것이다.

수입은 당연하게 위기의 유발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조선사들과 해운사들이 회복하여 이 자금을 상환할 여력이 제한된 시간 내에 가능하지 않다고 보면 그 책임은 기업 전체가 지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기업들은 수익에 비례하는 기업 구조조정 부담금을 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공적자금은 세금으로 막아야 하며 부담이 국민 전체에게 확산되는 것이다. 그런 일은 막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시장경제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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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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