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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기업 구조조정]정부, 시급하다지만…‘한은 발권력’ 동원도 국회 동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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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부채 증가 책임 추궁 우려

경향신문

지난달 24일 경남 거제시 연초면 오비리 한내공단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에서 한 노동자가 휴일임에도 출근해 용접작업을 하고 있다. 이 업체는 직원들에게 3개월째 월급을 주지 못했다. 거제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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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수행할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자고 주장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시급성’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관련 예산을 편성하려면 국회 동의 절차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해운업 부실은 이명박 정부부터 계속돼 왔고 현 정부 역시 지난 3년간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게다가 한은 발권력을 활용한 국책은행 출자나 채권 인수도 결국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국가부채 증가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발권력 동원이라는 ‘불투명한 수단’을 쓰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한은 발권력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신속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경은 복잡하다”고 답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구조조정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조선·해운업 불황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부터 지속된 일이고, 미국과 유럽 등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박근혜 정부도 사실상 외면해 오다 갑자기 “시급하다”며 한은 발권력 카드를 꺼내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은 2일 “그렇게 절체절명의 위기라면 총선 전에는 왜 가만히 있다 지금 와서 시급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재정을 투입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고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게 되니 이를 한은 발권력 동원에 기대어 피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금융위기 직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에 나선 점을 들어 한은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대형 은행과 대기업들이 부도 직전까지 가면서 시스템 붕괴의 위험이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다는 특수성도 있었다.

또 당시 미국은 먼저 엄청난 규모의 국채 발행에 이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중앙은행이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돈을 푸는 수순을 밟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상당히 안 좋은 건 맞지만 시스템 위기로 치닫던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단기간 내 끝날 일도 아니고 시급을 요구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돈을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추경 편성과 국채 발행 대신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더라도 국회 동의 절차는 불가피하다. 정부는 한은이 산은에 출자하거나 산은이 발행한 채권을 인수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데 현행법으로는 모두 불가능하다. 산은이 발행한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유사시 투자금이 주식으로 자동 전환되는 후순위 채권) 역시 한은이 직접 인수하려면 정부 보증이 필요해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면 빨리 국회를 열어 보증 동의를 하든, 법 개정을 하든 절차를 밟으면 될 것”이라며 “한은 발권력을 동원하더라도 법 개정을 통해 절차상 하자가 없게끔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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