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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기업구조조정 선장이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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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구조조정 골든타임을 사수하라]③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대기업 구조조정은 어불성설

신기촉법도 논란…"구조조정에선 배임 면책 필요"

뉴스1

지난해 서울 중구 팬오션 사옥. /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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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은행은 기업구조조정을 해도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털고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죠. 행정지침을 내리는 금융당국도 결과가 나쁘면 뒤집어쓰려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돈을 구조조정 기업에 투입해야 하는데,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기업구조조정을 담당하는 한 채권은행 담당자의 토로다. 정부는 시장에서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시장 실패 현상은 매년 발생한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갈 '선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기는 하다. 유일호 부총리를 비롯해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까지 모두, 같은 취지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전혀 딴판이다. 지난 14일(뉴욕 현지 시간) 유일호 부총리의 현대상선 발언에 대한 해양수산부의 도발(?) 진위를 파악하려는 금융인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19일) 해수부는 부랴부랴 '해운업 구조조정 관련해 정부 내 이견은 없다'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정부는 시장에서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면 외국에선 자기 산업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타국에 피해를 준다고 본다"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 현실에서 대기업을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해 본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책임 문제다. 금융업계에선 "이렇게 안을 올려도, 저렇게 안을 올려도 사인(sign)이 분명하지 않다"고 매번 불만이다.

정부는 WTO를 핑계로 대지만, 대기업 구조조정 문제는 항상 정치적인 사안이었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핑계 자체가 정부는 책임 범위에서 빠지겠다는 의사의 방증일 뿐이라고 민간 금융인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국제통화기금(IMF) 이창용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최근 "구조조정은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민간에선 기업구조조정을 책임지고 하려면 신(新)기촉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조조정의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반대 채권자 보호를 강화하고 채권자 범위를 확대하면 구조조정의 효율성만 떨어진다는 얘기다.

지난달 국회입법조사처와 은행법학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 기존 기촉법에선 반대매수청구권 행사가 2개 안건에 대해서만 가능했지만, 새 기촉법에선 채권자의 재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안건 대부분으로 확대됐다. 당시 홍재필 금감원 부국장은 "은행이 연이어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정상적으로 회생 가능한 기업도 어려움에 부닥칠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촉법에서 채권자 범위를 확대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몰된 기촉법에서 채권자는 비금융 사업자나 외국금융기관, 상거래 채권자를 제외한 채권금융기관에 한정했지만, 새 기촉법에선 모든 금융채권자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대됐다. 수많은 채권자가 의견을 개진하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혼란이 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채권은행들은 배임 문제로 구조조정 담당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회생이 될지 불확실한 회사에 채권을 포기하는 결정을 할 경우, 나중에 잘못됐을 때 배임 책임을 질 가능성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구조조정으로 인한 경우에 한해서는 배임죄를 면책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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