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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이도흠의 내 인생의 책] (5)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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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유전자’를 바꾸는 법

2008년에 안식년을 지리산 자락의 암자에서 보냈다. 밥을 짓고 나무하여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수고를 하였지만, 새소리에 잠을 깨 명상을 하고 차를 마시며 능선을 넘어가는 구름을 보다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한가로움을 함빡 즐겼다. 당시 읽은 것 중 바로 이 책이 암자 생활 이후의 공부에 전기를 가져왔다.

경향신문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일신론이든 선신과 악신의 이신론이든,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반증이 불가능한 비과학적 진술이다. 반면에 도킨스는 반증이 가능한 이기적 유전자론을 펼친다. 인간은 유전자 보존과 복제를 위해 프로그램된 ‘생존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유전자는 철저히 자신을 더 많이 복제하는 목적을 수행한다. 어미의 희생처럼, 이타적 행위도 실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지닌 개체의 수를 늘리려는 이기적 목적의 발현이다. 충격이었다. 도킨스가 옳다면, 인간의 선함과 이타성에 바탕을 둔 진보적 주장들은 당위적일 뿐 타당성을 잃는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이 본디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강하게 부정하고 싶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보편적 특성을 예리하게 통찰한 과학이었다.

그 후 도킨스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과학’에 매진하였다. 에드워드 윌슨, 요아힘 바우어, 데니스 노블, 글라코모 리촐라티, 후성유전학(epigenetics)을 종합하면, 생명은 다른 유기체와 환경이 서로 조건으로 작용하고 영향을 끼치며 서로를 생성하는 존재이며,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유전적 키메라(genetic chimera)다. 협력, 공감, 학습, 사회제도, 문화, 지도자에 따라 한 집단의 선악의 비율은 변한다. 가난해도 선한 이웃으로 넘쳐나던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변하였다. 이번 선거에 싫어도 참여하여 악마성을 조장하는 자를 심판하자. 그래야 이 땅에서 선의 비율이 조금은 늘어나지 않겠는가.

<이도흠 |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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