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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어머니 없는 추석 맞을 줄은… 메르스 희생자, 이대로 잊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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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173번 환자 아들의 사모곡

홀로 두 아들 키우며 고생한 어머니

장애인 활동 돕다 응급실서 감염

병명 모르고 병원 전전하다 끝내…

"정부ㆍ병원 진심어린 사과 없어 1인 시위로 뒤늦게 자식 도리"
한국일보

지난 6월 메르스로 어머니를 잃은 김형지씨가 24일 서울 강동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처음 1인 시위에 나선 김씨는 "어머니가 이대로 잊히는 건 자식 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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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국용 고기 300g, 조기 3마리, 사과, 대추, 곶감, 고사리…’

김형지(48)씨의 수첩에는 추석 차례상 장볼 거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명절 차례상은 늘 어머니가 준비했지만 이번 추석에는 김씨 몫이다. 김씨는 지난 6월 24일 어머니를 잃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사망한 ‘173번 환자’ 최모(70)씨가 그의 어머니다. 맏며느리인 김씨의 아내가 중국인이라 장 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명절 상은 늘 어머니가 마련했다. 어머니를 여읜 후 꼭 석 달 째라는 지난 24일 오전, 김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서울 강동성심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서른 살 때 위암으로 남편을 잃었다. 7살, 8살 어린 두 아들에다, 동네 구멍가게에 진 외상값만 늘어가는 가난에 어머니는 방에 연탄가스를 피워 목숨을 끊으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출판사 공장에서 책 제본, 청소 등 20년 가까이 허드렛일을 하면서 김씨 형제를 길러냈다. 성장한 김씨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치킨집, 카센터, 중국집 등 여러 장사를 했지만 썩 잘 되지는 않았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사는 어머니는 장애인 활동보조인,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활비를 보탰다. 김씨는 “내가 너무 불효 막심한 아들이라서, 어머니께 더 죄스럽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그 날’ 강동경희대병원의 응급실을 찾은 건 활동을 돕는 시각장애인의 몸이 불편해서였다. 메르스가 급속히 퍼지던 6월5일이었고, 10여 명을 감염시켜 나중에 ‘슈퍼전파자’라는 이름이 붙은‘76번 환자’가 그 응급실에 있었다. 낮에는 장애인활동보조인 일과 텃밭 농사를 하고, 밤에는 요양보호사 일을 할 정도로 정정했던 어머니는 얼마 후 열이 38도 넘게 치솟았다. 김씨는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메르스를 의심한 곳은 없었다”며 “어머니의 메르스 환자 접촉사실을 몰라 우리도 생각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찾은 강동성심병원에서는 고열과 함께 허리 통증을 호소했던 어머니를 정형외과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어머니는 6월 20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틀 지나 메르스 확진을 받았고, 확진 이틀 뒤에 돌아가셨다. 창졸 간에 육친을 잃었지만 격리 상태였던 김씨는 임종도, 장례도 하지 못한 채 화장 후 싸늘하게 식은 유골만 전해 받았다.

어머니를 잃은 뒤 김씨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할머니를 유독 따르던 초등학교 1학년 아들 역시 불안 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어머니를 이대로 떠나 보내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파 1인 시위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병원 이름만 일찍 공개했다면, 병원에서 좀 더 일찍 메르스 진단을 내렸다면 어머니 같은 피해자는 없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좀체 마음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진심 어린 사과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가 몸에 두른 피켓에는 “국가가 모든 것을 해 줄 수 없고, 지자체장도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반성과 책임이다”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아직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유가족 장례비 1,000만원도 받지 못했다. 김씨는 “돈 몇 푼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반성 없는 당국 때문에 이중으로 힘겨워 하는 메르스 희생자 유족들의 고통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저희 어머니로 인해 직ㆍ간접적인 격리자가 7,000명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감염자가 한 명도 없어서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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