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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내가 겪은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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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것이 아름답다] "정부, 메르스보다 경제 선택"

"들으셨어요? 메르스 사망자가 생겼는데, 이 동네 분이래요. 시내버스 회사 간부인데 그 회사 운전기사들이 모두 문병을 갔었대요."

"시내버스를 타도될까요? 우리 직원들은 시내버스 안 타고 자가용 승용차를 함께 타기로 했어요."

최초 사망자가 생긴 날 도착한 병원 행동지침문서

평소에 텔레비전 뉴스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지난 5월 20일에 최초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있고서 뉴스가 메르스 사태를 알린 지 며칠이 지나도록 아예 몰랐다. 들어보지도 못했다. 1주일이 지나고서야 스치듯 들었고, 10일쯤 지나 SNS에서 난리가 난 뒤에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최초 환자 발생지와 같은 생활권인데, 공식으로 병에 관한 아무런 정보를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소문을 듣고 SNS를 통해 사태를 파악하고, 기사를 찾아보고, 질병관리본부 지침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은 사태가 발생하고서도 한참 뒤였다.

그 다음 날(6월 1일) 우리 지역에서 최초 사망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우리 동네에서 전염병 환자가 생겼으나, 아는 바가 없었다. 신문 기사에는 A병원, B병원, C병원, D병원에서 환자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계속 소문만 무성했다. 메르스 최초 사망자는 어느 아파트에 산다더라. 어느 학교 학생이 의심 환자라고 하더라. 병원에 가면 안 된다더라. 학교에 가면 안 된다더라.

최초 사망자가 생기던 날 질병관리본부에서 '중동 호흡기 증후군 의심 환자 내원 시 행동지침' 문서가 도착했다.

대응 개요. 38도 이상의 발열과 기침, 호흡곤란 같은 호흡기 증상 또는 폐렴 또는 급성 호흡 부전이 있다. 예. 증상 시작 전 14일 이내에 중동 지역에 여행하였거나, 중동호흡기 증후군 확진 환자와 접촉하였는가. 예. 그렇다면 환자를 격리하고 관할 보건소에 즉시 신고하라. 중동 호흡기 증후군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증. 치명률 30∼40퍼센트(%). 잠복기는 최소 2일에서 최대 14일까지. 예방백신과 치료제 없음.

이때만 해도 발열의 기준은 38도였다. 환자와 접촉의 기준은 2미터(m) 이내에 머물거나 같은 병실에 있던 경우를 의미했다. 어느 병원에서 접촉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답답해하고 있으니 검색을 해서 알려 주는 사람도 생겨났다.

"A병원은 아산에 있는 어디고요.B는 평택 어느 병원이라네요. 환자는 지금 어디 어디에 있다고 해요."

그런 소문들을 다시 편집한 것들이 돌아다녔다. 이 정보라도 보고 다시 그림을 그려가며 대응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소문 수준이라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며칠 더 불안과 불만과 불신의 시간이 흘러갔다. 환자들은 웬만하면 병원에도 오지 않았다. 외래환자가 급감했다. 불안의 정점에 서울시장의 긴급 기자회견이 있었고, 정부는 이틀 뒤에야 정보를 공개했다.

프레시안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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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의심 환자를 진료한 날

메르스 때문에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했다. 메르스는 의료문제이기도 하고, 사회문제이기도 하며, 정치문제이기도 했다.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또 모른다.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것까지 어렵지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비말 전파'와 '공기 전파'의 차이까지 알게 됐다. 하지만 메르스의 잠복기가 얼마인지, 지역사회 전파가 되는지는 (정부가 '사실상'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 7월 27일 현재까지) 아직 잘 모른다.

이제 거의 대부분의 국민은 정치와 행정의 책임자가 메르스 관련 병원을 공개하지 않고 정보를 통제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이런 사태에 대처를 잘 못하나?' 이상할 정도다. 메르스 사태로 병원도 경영 상태가 어려워지고, 지역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경제가 큰일'이라며, 경기 부양책도 쏟아냈다. 생명이 문제냐, 불안이 문제냐, 경제가 문제냐, 생각을 많이 한 셈이다.

우리 병원이 있는 지역은 메르스와 관련해 뜨거운 곳이다. 최초 발생한 평택과 같은 생활권이고, 이 지역에서 최초 사망 환자도 발생했다.

(저자가 글을 쓰기) 3주 전, 진료실에서 메르스라고 의심할 만한 환자를 봤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어깨도 아픈, 온몸이 아픈 막연한 몸살로 내원한 환자. 문진하고 체온을 측정했다. 딱 14일 전까지 메르스 발병 병원에 아내가 입원했고, 본인은 간병을 위해 날마다 병원을 오갔다고 한다. 미열이 있었다. 그동안 환자 발병과 관련한 보도를 살펴보니, 미열만 있는 메르스 환자도 있었고 호흡기 증상이 없는 환자도 있었다고 한다. 잠복기라고 알려진 2주를 훌쩍 넘겨서 발병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 환자도 메르스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메르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의심 신고를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보건소에 신고했다. 환자는 자가 격리와 함께 검사를 받았다.

48시간 자가 격리를 마치고

보건소에서는 우리 의료진의 격리에 관해서는 옳으니 그르니 별말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내부 회의를 거쳐 의심 환자와 접촉에 의한 전파 가능성을 두고 고민한 끝에 병원 관계자 세 명은 '우려가 된다'고 판단했다. 우리 병원은 한나절 폐쇄에 들어갔고, 구석구석을 소독했다. 접촉한 의료진은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마음이 심란했다. 진료를 약속한 환자를 못 보게 되는 것도 걱정이고, 집에서 격리하는 것도 복잡할 것 같았다. 집에 학생이 두 명이나 있는데, 메르스 환자를 보는 의료인의 가족인 학생은 학교에서도 기피 대상이라고 들었다. 집에 연락하고 일단 집에 들어서면서 가족들과 모든 접촉 가능성을 나름대로 차단했다. 방 하나를 격리실로 정하고, 그 방에서 옷 갈아입고 잠도 자고 식사도 했다. 격리 이튿날, 가족이 학교 가고 직장에 나간 뒤 격리 방을 열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려니, 그것도 참 힘들었다.

다행히 의심 환자의 검사 결과는 48시간 간격을 두고, 두 번 다 음성이었다. 우리 병원 의료진도 격리를 해제했다. 그 뒤 아침마다 메르스 환자 발생 지역과 경유 병원을 확인해 게시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확인, 또 확인하며 환자를 어렵게 진료했다.한고혈압 환자는 약을 타러 올 날짜가 2주나 지나서 내원했다. 혈압이 아주 높았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약을 많이 거르셨겠네요."

"약은 벌써 떨어졌어요. 병원에 가면 병을 얻을 수 있다는데 무서워서 올 수가 있어야지요."

처음부터 환자 관리와 병원에 대한 정보공개가 잘 됐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부는 정보를 공개하고 질병 자체에 대해 대처하기보다는 경제를 먼저 고민했던 것 같다. 혹은 시민들에게 알리면, 필요 이상으로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잘 몰라서 그렇게 했을까? 아니면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었나? 정책 결정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가운데, 우선순위에서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은 분명했다.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기자 : 강대곤 안성의료생협 서안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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