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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2심서는 인정된 '대선 개입'…재판부 판단 무엇이 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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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전후 사이버활동, 정치관여 연장선" vs. "대선개입 해당"

"낙선 목적 없었고 조직적 활동 아니다" vs. "조직적 활동 맞다"

뉴스1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9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 =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 등을 동원해 사이버상에서 정치, 선거 등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64) 전 국정원장의 운명이 항소심에서 엇갈렸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상환)는 국가정보원법 위반·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9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 등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항소심에서 원 전원장의 운명을 가른 것은 '2012년 대통령 선거 개입'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1심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트위터·댓글 활동이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원 전원장에 대해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와 정반대로 국정원 심리전단의 트위터·댓글 활동이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 원 전원장에 대해서도 선거운동 지시·선거운동에 대한 미필적 고의 등을 인정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대선전후 사이버활동…정치관여 연장선? 선거운동?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1·2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린 것은 대선 전후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활동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특정 시점 이후의 사이버활동에 대해 대선 이전부터 계속해왔던 특정 정책에 대한 지지·반대활동으로 보인다며 '정치관여 활동의 연장선'일지언정 '선거운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또 검찰이 선거운동의 시작점으로 기소한 '2012년 1월'은 18대 대선 후보자의 윤곽조차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 통상적인 선거운동의 경우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선거운동이 활발해지는데 공소사실에 따르면 오히려 2012년 10월 이후 트윗활동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 등도 아울러 지적했다.

이같은 논리 때문에 1심 판결은 판결 직후부터 "정치에 개입했지만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논란에 휩싸였다. 일각에서는 '정치 현실과 타협한 모순된 판결'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즉 "정치관여에 해당하는 글과 선거개입에 해당하는 글이 차지하는 비중에 주목한 결과 대선 국면에 접어들 무렵부터 선거글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며 특정 시점 이후 사이버활동은 선거운동으로 볼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구체적인 정황으로 제시한 부분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확정됐을 당시 민주당을 비판하는 글을 다수 리트윗한 부분, 사형제 존폐가 선거 쟁점이 됐을 당시 민주당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그대로 확산한 부분 등이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제기 당시 지속적으로 NLL 관련 글을 작성해 리트윗한 부분,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 시점부터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 사퇴 때까지 안 후보 반대 트위터 글은 현저히 줄어들다가 사퇴 이후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았던 부분 등도 함께 지적했다.

뉴스1

(서울고법 제공). © News1


◇목적성·능동성·계획성 판단도 달라…항소심 '조직적 활동' 인정

선거법상 불법 선거운동으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인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에 대한 두 재판부의 판단도 전혀 달랐다.

현행 선거법상 선거운동은 '특정 후보를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규정돼 있고 선거운동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 등 요건을 갖춰야 한다.

국정원 직원 등과 같은 공무원이 이런 요건을 갖춘 '선거운동'을 할 경우 '위법행위', 즉 '불법 선거운동'이 된다는 것이 현행 선거법의 규정이다.

1심 재판부는 이같은 사이버활동에 선거운동의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 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당선 혹은 낙선시킬 목적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선 원 전원장의 발언을 볼 때 명시적으로 선거운동의 지시라고 볼 만한 내용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또 오히려 원 전원장이 "대선정국을 맞아 원이 휩쓸리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하라", "전직원들이 선거과정에서 물의를 야기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라" 등 발언으로 선거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와 정반대로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 등을 모두 인정했다.

즉 "엄격한 지휘·명령에 따라 전해지면 심리전단에 의해 신속·정확하게 집행되고 사후보고가 이뤄져 평가까지 이뤄지는 과정을 볼 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행위"라며 '계획성'을 인정한 것이다.

또 원 전원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도 인정하면서 국정원의 공식적인 해명이었던 "국정원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특정 후보자를 낙선시킬 목적'에 대해서도 "사이버활동이 이뤄진 시점, 상황, 규모, 내용, 원 전원장이 한 선거 관련 발언과 태도 등을 거듭 고려하면 미필적으로나마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못을 박았다.

◇항소심 재판부 "정보기관 선거 개입에 엄중한 책임 물려야"

한편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는 "일부 내용이 국정원 직원 본인에 의해 작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파일 일부에 대해서도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해당 국정원 직원이 트위터가 처음이라 '팔로우'를 받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 다른 직원으로부터 '팔로우'를 많이 받는 요령을 건네받는 과정 등에서 일부 다른 사람의 글이 들어가 있을 뿐 오랜기간 장기간에 걸쳐 작성하면서 업무의 기초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원심에서 175개만 인정됐던 국정원 직원 사용 트위터 계정개수는 716개, 원심에서 11만3621건만 인정됐던 트위터글 개수도 27만4800개 등으로 늘어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같이 원 전원장의 '대선 개입'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물려야 한다는 점 또한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은 과거 보고서를 통해 정보기관의 개입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무력화하는 것이고 정보기관 권한의 남용이나 오용을 넘어서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이라고 한 바 있다"며 "기왕 드러난 불법적 활동에 대해 엄격히 단죄함으로써 이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정보기관의 직원이) 마치 일반 국민인 양 선거와 관련된 의견을 조직적으로 전파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토론했던 국민들은 사이버 공론장의 순수성·자율성을 의심하게 됐다"며 "사이버상에서 북한의 심리전이 실제 행해지고 있지만 명분의 정당함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ability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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