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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청와대 watch] 문창극 자진사퇴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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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자진사퇴했지만,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철회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끝까지 재가하지 않음으로써 문 후보자가 결국 사퇴하게끔 만들었다는 얘기다.

문 후보자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고 저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분도 그 분이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지난 12일 문 후보자의 ‘친일’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청와대는 “여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문 후보자가 15일 문제의 발언을 해명한 후에도 여론이 악화일로를 걷자 청와대의 기류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달리진 분위기는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재가를 연기하면서 분명해졌다. 박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 중이던 지난 18일 “귀국 후 임명동의안 재가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이는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저도 여기서 차분히 준비하겠다”며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그는 이튿날에도 “입장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신호’를 무시한 셈이다.

문 후보자는 친일 논란으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자 청문회에서 직접 해명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진사퇴할 경우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인 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의 이런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청와대는 난감했다. 박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재가할 경우 여론 악화가 불 보듯 뻔하고, 그렇다고 지명철회할 경우 인사 실패를 시인하는 꼴이 된다는 점에서다. 결국 자진사퇴가 ‘정답’인데 청문회까지 가겠다는 문 후보자의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오히려 문 후보자는 19일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이는 안중근 의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며 자신을 둘러싼 친일 논란을 적극 해명했다. 20일에는 “일본의 고노담화 검증은 양국 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며 일본을 비판하기도 했다.

문 후보자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박 대통령이 21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다. 청와대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문 후보자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문 후보자는 이틀 동안 자택에서 칩거한 데 이어 23일에는 “내 할 일 하며 기다리겠다”며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문 후보자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돌린 것은 그의 조부가 독립유공자라는 국가보훈처의 발표가 나온 후였다. 이를 통해 여론이 반전되고 자신의 명예가 어느정도 회복됐다고 판단하자 자진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박 대통령 입장에선 최선의 시나리오였고, 결국 뜻대로 된 셈이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명동의안 재가를 미뤄 사실상 청문회 행을 막은 박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문 후보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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