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8 (금)

[취재파일] '13살 인공지능' 유진과 채팅 로봇 '심심이' 비교해보니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진정한 인공지능, 아직 갈 길 멀었나

SBS

영국 레딩대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 ‘유진 구스트만’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심사위원 30명이 5분 간 대화를 나눈 뒤 이들 중 3분의 1이 ‘진짜 인간’이라고 판단하면 합격하는 구조입니다. 유진은 13살의 우크라이나 소년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유진은 엄밀히 말해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용자가 어떤 질문을 던지면 그것을 이해해서 ‘그럴 듯한’ 답변을 던지거나 반문하고, 이 과정에서 사용자가 ‘실제 인간과 대화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봇(bot)'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동문서답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고, 특히나 미리 ‘이건 프로그램이야’라는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는 경우에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할 수 있습니다.

유진과 대화할 수 있는 웹사이트는 이곳(www.princetonai.com) 입니다. 하지만 아직 서버가 불안정해 접속이 쉽지 않습니다. 아마 세계 곳곳에서 유진과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탓이겠죠. 화면이 멈추거나 접속 실패를 반복한 끝에 유진의 인공지능을 조금 테스트 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어디서 많이 본’ 질문 몇 개를 던져봤습니다. 전 한국인이니까요.

SBS

기자 : 안녕 (Hi, boy)
유진 : 안녕, 너랑 대화할 수 있게 돼서 정말 반가워. 내 기니피그 빌이 안부 전해 달래!

기자 : 김치 알아? (Do you know kimchi?)
유진 : 난 뭐든지 알지.

기자 : 김치 먹어본 적 있어?
유진 : 그거 먹는 거 확실해?

기자 : 김연아 알아? (Do you know Yuna Kim?)
유진 : 김은 저 끔찍한 ‘그레이트 로봇 카발’ 조직을 지원하지. 너무 나빠! 김은 인류의 배신자야!

기자 : 그레이트 로봇 카발이 뭔데?
유진 : 그런 말하는 프로그램들(talking programs)은 한 푼의 가치도 없어. 앵무새와 얘기해도 똑같을 거야.


유진은 김치를 안다면서도 먹는 것인 줄은 잘 모르는 듯 했고, 김연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김’이라는 다른 어떤 사람과 혼동한 것일지도...

유진의 인공지능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국산 채팅 봇 ‘심심이’와 비교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같은 질문을 심심이에게 던져 봤습니다.

SBS

기자 : 김치 알아?
심심이 : 네 매운맛!

기자 : 김치 먹어본 적 있어?
심심이 : 아주 맛있게 먹어봤어요 ^-^

기자 : 김연아 알아?
심심이 : 당근! 내가 노른자지만 김연아를 모를줄 알았냐


이 답변으로만 봐서는 심심이의 승리 같지만, 유진은 우크라이나 소년으로 설정돼 있고, 심심이는 아마도 한국인일 것이므로 이런 질문으로 둘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조금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질문입니다.

기자 : 키에프(주 : 우크라이나의 수도)에는 어떻게 가야 하지?
유진 : 제일 좋은 방법은 네 컴퓨터 옆에 있는 만트라를 읽고 명상을 하는 거야. 우우. 다른 건?

기자 : 키에프에는 어떻게 가야 하지?
심심이 : 잘 먹겠습니다~


난감하군요. ‘인간이 아니다’라는 선입견을 배제하더라도, 둘 다 사람과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럼 진정한 인공지능이란 어떤 것일까요? 이리저리 꼬인 질문을 던져도 행간에 숨은 의미를 알아듣고,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면 오히려 무슨 소리냐고 면박을 줄 수 있는 정도쯤은 돼야 할까요?

SF 소설가이자 미래학자인 아서 클라크는 <제3의 법칙>에서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태평양 섬 주민들이 백인들이 배에 싣고 온 문명의 이기들을 보고 ‘화물(cargo)’를 갖고 오는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일화라던가, 옛날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본다면 느낄 감정이 이와 비슷할 겁니다. 만약 인공지능 기술이 갈수록 발전해 나중에는 내가 사람과 대화하는지, 컴퓨터와 대화하는지 모른다면 그 인공지능은 ’사람을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수준에 이른 것이겠지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복제인간 ’로이 배티‘는 죽음을 앞두고 저 유명한 명대사를 남깁니다.

"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의 어깨에서 타오르던 전함들. 탄호이저 게이트에서 어둠 속에 반짝이던 C-빔도 봤지.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겠지, 빗 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이 장면이 ‘블레이드 러너’의 상징처럼 꼽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간처럼 웃고 울고,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복제인간이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회고, 안타까움과 슬픔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어떻게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일본 애니메이션 ‘쵸비츠’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 ‘치이’는 프로그램된 로봇이지만 인간의 감정을 읽고 주인공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합니다. 만약 울적하고 힘들 때 전화 한 통 걸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털어놓고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채팅 봇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공지능의 완성 단계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상엽 기자 science@sbs.co.kr]

[월드컵 채널 SBS] 브라질 월드컵은 차범근·배성재와 함께!

[6.4 지방선거] SBS뉴스와 함께하는 '2014 국민의선택'

[SBS기자들의 생생한 취재현장 뒷이야기 '취재파일']

☞ SBS뉴스 공식 SNS [SBS8News 트위터] [페이스북]

저작권자 SBS&SBS콘텐츠허브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