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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북한제 물증 확인하고도 9일간 쉬쉬… 軍 신뢰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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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심장까지 뚫려 충격

정부는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 봉일천 야산에 추락한 소형 무인기에서 북한식 표기가 발견되고, 탑재된 캐논 카메라가 청와대를 찍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민간 무인기의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당시 군 관계자는 “민간 업체의 무인기이고, (북한과 관련한) 용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도 특정 지역을 집중적으로 촬영한 게 아니라 비행 동선을 따라 가며 촬영해 화질이 나쁘다”고 설명했다.

조사에 참여한 무인기 전문가는 3일 “선뜻 납득하기 힘든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군의 태도는 지난달 31일 백령도에서 또 다른 소형 무인기가 발견된 뒤 확연히 달라졌다. 뒤늦게 ‘대공 용의점’을 두고 조사한다는 입장이 나왔고, 2일 ‘북한 비행체’로 잠정 결론지었다. 파주 무인기가 추락한 지 9일 만의 뒷북 대응이었다. 언론에는 소형 무인기의 사진까지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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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이 같은 애매모호한 행태는 북한에 의해 대통령의 안위와 직결되는 청와대 방공망이 뚫렸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사건을 축소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수방사 예하 제1방공여단은 수도권에 다수의 방공 레이더를 중첩 운용하기 때문에 이번에 파주에 추락한 소형 무인기라도 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파주 무인기엔 청와대와 경복궁, 파주∼서울 국도 1호선 등이 찍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방공 레이더망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합참은 당시 방공부대의 근무체계와 레이더망 이상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만약 북한 소행이라면 청와대 방공망이 뚫린 것이어서 군으로선 곤혹스러울 수 있다”고 털어놨다. 청와대가 2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3시간 넘게 대비책을 논의한 것도 청와대 방공망을 무력화한 무인기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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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발견된 소형 무인기가 북한 비행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정부와 군이 어쩔 수 없이 파주 무인기의 대공 용의점을 공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은폐 배경에는 무인기의 비행 동선과 청와대 촬영 사실을 공개할 경우 북한에 오히려 유리한 정보를 건넬 수 있다는 군사적 판단이 가미됐을 수 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우리가 입수한 내용들을 정확하게 다 공개하는 게 과연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서 옳은 일인지 고민해 볼 때”라고 밝혔다.

국회 국방위 한 관계자는 “북한이 원한다면 무인기보다 훨씬 좋은 수단을 이용해 청와대 등 국가 기간산업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면서 “대응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작은 무인기까지 막지 못했느냐며 군을 몰아붙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대변인은 파주 추락 무인기가 북한 제품인 것을 알고도 일주일이나 군 당국이 쉬쉬했다는 지적에 대해 “겉으로 심증적으로 보는 것과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며 “정부가 국민에게 발표하면 그것은 국제적으로도 공인되는 수준의 내용을 발표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파주 무인기를 발견했을 당시 군 당국이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일각에서는 국가정보원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국정원이 파주 무인기 사건 초기부터 개입해 대공 용의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방부의 행동 반경을 제약했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국정원이 파주 무인기 조사를 주도하면서 사건 처리를 지연시키다 백령도 무인기 추락 사건이 터지자 국방부 측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청와대는 국방부 등 관련 부처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일주일 전에 언론에 관련 보도가 나갔음에도 국방부가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무인기를 이용해 각종 테러와 정찰 등을 감행하는 등의 도발을 할 수 있다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군이 안일하게 대응해 북한에 우리의 영공을 내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발생시켰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명박정부 때 임명된 김관진 국방장관을 교체해 군의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남상훈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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